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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시. 소설. 수필.

의자와 식탁, 길덕호

by 프리정아 2025. 11. 5.

아내가 외출한 사이 설거지를 한다

삶의 찌든 때, 사랑의 찌꺼기들이 그릇에 붙어

우리들의 어설픈 삶들을 몸으로 보여준다

수돗물 틀자 와르르 박수 소리가 쏟아지고

물살을 맞은 그릇들은 서로의 몸을 비비며

서로를 기대고 부딪히며 물방울의 춤을 춘다

그릇의 앙상한 몸들을 닦기 위해

찌든 생채기 마저 어루만지기 위해

거품으로 단장을 하고 이리저리

우리의 흔적들을 문지르다 보면

어느새 거울처럼 떠오르는 삶의 단상들

생명을 가졌다는 즐거운 환희

하지만 그와 함께 찾아온 직장에의 종언

당신은 둥지를 잃었지만 소중한 새들을 얻었어요

설거지 통 속에 들어간 그릇들처럼

아이들과 함께 비비고 문지르고 살았던 세월들

서로 기대고 부딪히며 사랑의 물살을 헤치던 나날들

살아가던 시간들이 물방울처럼 튀어오르고

함께 가지를 드리우며 새들을 키운 지 이십여 년

때를 벗기고 기름을 지우는 치열한 삶의 한 귀퉁이에서

서로의 그늘이 되기 위해 넓게 이파리를 펼치고

고단한 등허리에 거품이 되어 서로를 닦아주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식탁의 모서리까지 둥글게 품으며

흔들리지 않는 의자가 되어 가족들을 자신에게 앉히던

연약한 아내를 생각해 본다

설거지는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일진대

집에 온 아내가 환하게 웃어주길 기대하는 나는 아직

식탁이 되기엔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제3회 낭만문학상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