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란 어떤 인간 인가로 시작하여 본인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 소설을 쓰는 본인의 방식, 기타 그 동안 자신과 관련된 여러 일들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는 책이었다.
1978년 4월 야구장에서 데이브 힐턴 선수의 2루타 공 치는 소리를 듣고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고 문득 생각한, 하늘의 계시 같은 이야기. 소설가의 길을 시작한 작가의 이야기가 조금 의외였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소설 초보자의 소설 쓰기가 기존 소설가와 다를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소설이라는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어 읽은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오리지낼리티에 대하여
특정한 표현자를 ‘오리지널’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1)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고 있다. 잠깐 보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 가는 자발적, 내재적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
3)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결국 소설가가 창조한 소설은 신선하고, 에너지 넘치고, 그리고 틀림없이 그 사람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
2. 소설가가 되려면 어떤 훈련이나 습관이 필요한가?
1) 소설가가 되려는 사람에게 우선 중요한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소설의 구성을 기본부터 체감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고 소설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초 체력이다.
2) 그 다음으로 할 일은 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을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다.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그 일의 원래 모습을 소재로서 최대한 현상에 가까운 형태로 머릿속에 생생하게 담아두는 것이다.
3) 새로운 언어와 문체가 필요하다. 기성 작가들이 써먹지 않았을 만한 언어와 문체를 새로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념할 점은 ‘설명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다양한 단편적인 에피소드나 이미지나 광경이나 언어를 소설이라는 용기 안에 척척 집어넣고 그걸 입체적으로 조합해 나간다. 그 조합은 통념적인 논리나 문학적인 언어와는 무관한 장소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기본적인 작전이다.
4)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라.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하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올바른 한 쌍의 눈을 갖고 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이다.
3. 소설 쓰는 작업을 인내심을 갖고 해 나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1) 지속력이다.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체력 유지를 위한 정기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이 불가결하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뇌 내에서 태어나는 해마 뉴런의 수는 유산소운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막 태어난 뉴런에 지적인 자극을 주면 그게 활성화해서 뇌 내의 네트워크와 이어져 신호 전달 커뮤니티의 유기적인 일부가 된다. 즉 뇌 내 네트워크가 좀 더 확장되고 촘촘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학습과 기억 능력이 높아진다. 그 결과 임기응변으로 사고를 전환하거나 비범한 창조력을 발휘하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좀 더 복잡한 사고를 하고 대담한 발상을 하는 게 가능해진다. 즉, 육체적인 운동과 지적인 작업의 일상적인 조합은 작가가 행하는 종류의 창조적인 노동에는 매우 이상적인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2) 소설가의 기본은 이야기를 하는 것(tell a story)이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의식의 하부에 스스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마음속 어두운 밑바닥으로 하강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 지하의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 손에 들고 의식의 상부 영역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그것을 형태와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전환해 나간다.
4.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 것인가?
인간을 묘사하려면 사람을 많이 알아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거나 분석하는 선까지 갈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의 겉모습이나 언행의 특징 등을 언뜻 눈에 담아두기만 하면 된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가리지 말고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 서로 다른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행동을 취하고, 그런 것이 맞부딪히면서 상황이 굴러가고 얘기가 앞으로 나아간다.
소설을 쓰면서 가장 즐겁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마음만 먹으면 나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인칭 또는 삼인칭으로 누구라도 다양하게 될 수 있다.
5.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나를 위해서 쓴다. 자기 치유적 의미와 자기 정화작용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의미가 있다. 모든 창작 행위에는 많든 적든 스스로를 보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직업적인 작가로서 항상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 독자의 존재를 잊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또한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모두를 즐겁게 해주려고 해 봐도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할 말은 네가 원하는 대로 연주하면 된다는 거야.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건 생각할 것 없어.
연주하고 싶은대로 연주해서 너를 세상에 이해시키면 돼.
설령 십오 년, 이십 년이 걸린다고 해도 말이야. " (재즈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멍크)
어쨌거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성공한 소설가가 되기까지 전편에 흐르는 결론은
일단 쓰기 시작한 것,
세상의 소리에는 그러려니 하되 자신의 일에는 철저한 점,
그리고 엄청난 독서이력,
창조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체력 등의 성공비결을 꼽아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옆에서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원본을 읽어보길 권한다.
'읽으며 > 시. 소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영민 시집 구구(문학동네 시인선 073 ) (1) | 2024.03.23 |
---|---|
봄의 정치(고영민 시집) (0) | 2024.03.21 |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장옥관 시집) (0) | 2024.03.20 |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시집) (3) | 2024.03.20 |
영원한 귓속말(문학동네시인선 자선 시집) (0) | 2024.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