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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트레킹

남파랑길 19코스(김영삼대통령 생가, 옥포대첩기념관, 장승포터미널) 거제구간

by 프리정아 2024. 1. 22.

1. 남파랑길 19코스 

- 김영삼대통령 생가<3.2km>덕포해변<4.5km>옥포항<4km>한화오션정문<3.8km>장승포터미널 ( 15.5km, 실거리 16.45km, 6시간 43분 소요)

- 김영삼 대통령 생가에서 장승포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거제시가 조성한 &섬길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이 있는 코스

- 코스가 어렵지 않아 초보자도 쉽게 걸을 수 있고, 대중교통이 용이해 접근성이 좋은 코스

- 덕포해수욕장, 옥포대첩 기념관 등 관광코스를 즐길 수 있으며 해안가 데크가 잘 되어있어 바다를 조망하며 걷는 코스

 

2. 관광포인트

- 대계마을의 김영삼대통령생가 기록전시관 관람 가능

- 아담하고 한적한 덕포해수욕장에서 집라인, 투명카누 등 레저활동도 가능함

- 임진왜란 중 해전에서 첫 승리를 거둔 옥포대첩을 기념하는 기념관에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릴 수 있음

- 바다와 육지의 풍경을 같이 볼 수 있는 옥포항과 세계 제1의 조선소인 한화오션

3. 여행자 정보

- 시점 : 장목면 김영삼대통령기록전시관(거제시 장목면 옥포대첩로 743)

  교통편) 고현버스터미널 32번 버스, 대계마을 하차

- 종점 :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거제시 능포로 126)

  교통편)고현버스터미널 11번 버스, 옥수동 하차

- 코스 내 다수의 편의시설 이용 가능하며, 대부분 평지라 초보자도 걷기 어렵지 않음

    <출처: 두루누비 홈페이지>

4. 주변 관광지

1) 옥포대첩 알기

임진왜란 때인 1592(선조 25) 5월에 옥포(경상남도 거제시 옥포동)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왜의 함대를 무찌른 해전.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과 동래성을 점령한 왜적이 계속 북상하자, 이에 당황해 남해현 앞바다에 피신해 있던 경상우수사 원균은 율포만호 이영남을 이순신에게 보내어 적의 상황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하였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휘하 장수와 의논한 끝에 출전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조정에 알렸다. 원균에게는 양도의 수군이 집결할 장소를 약속하였다.

 

조정의 출전 명령을 받은 이순신은 본영(지금의 여수) 앞바다에 집결한 휘하 장병과 전선을 점검한 뒤 전대를 편성하였다. 전선 24, 협선 15, 포작선 46, 모두 85척이었다.

 

54일 이순신은 본영을 출발해 소비포(고성군 하일면 춘암리)에서 하룻밤을 자고 당포 앞바다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원균의 전선 4, 협선 2척과 합세해 송미포(거제시 동부면)에서 작전을 짰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잔 뒤 57일 전 함대가 동시에 출항해 옥포 근해에 이르자 척후장인 사도첨사 김완이 적을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 때 도도가 지휘하던 왜선 30여 척은 홍백 기를 달고 해안에 흩어져 있고, 왜적들은 포구로 들어가 재물을 노략질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이에 왜적은 당황하여 6척을 앞세워 해안을 따라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아군은 이를 포위하고 맹렬하게 포격을 가해 왜선 26척을 격파하였다. 그리고 왜적에게 포로로 잡힌 3명을 구출해 임진왜란 중 해전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날 전투에서 탈출에 성공한 왜선은 몇 척에 불과하였다. 미처 배를 타지 못한 왜적은 육지로 달아났다.

아군은 달아나는 왜적을 추격해 영등포(거제시 장목면)를 거쳐 합포(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5, 다음 날 적진포(통영시 광도면)에서 11척을 각각 불태워 무찌르고 9일 본영으로 돌아왔다. 이순신은 이 전공으로 종 2품2 가선대부의 관계를 받았다.

<출처: 옥포대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옥포대첩기념공원

- 소재지: 경상남도 거제시 팔랑포 2길 87 (옥포동)

- 규모: 넓이 109398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경상우수사 원균과 함께 옥포만에서 왜선 50여 척 중 26척을 격침시킨 옥포대첩을 기념하여 조성하였다. 옥포해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첫 승첩으로 이후의 전황을 유리하게 전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57612일에 기념탑을 세웠으며, 1963년에는 옥포정을 완공하였다. 1973년에 옥포조선소가 들어서며 기념탑과 옥포정을 아주동 탑곡마을로 이건 하였다. 그러나 주변이 협소하여 199112월부터 현 위치에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높이 30m의 기념탑과 참배단·옥포루·팔각정·전시관 등을 건립하여 19966월에 개원하였다. 이중 '()' 자를 형상화한 참배단에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있다. 전시관은 옥포해전 당시의 해전도 등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며, 옥포루는 전망대를 겸하고 있는 팔각 정자이다. 공원에서는 매년 이순신 장군의 제례행사가 열리며, 616일을 전후하여 약 3일간 옥포대첩기념제전이 열린다. 개원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동절기는 5)까지이며 어른은 1000, 어린이는 4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인근에 옥포랜드와 덕포해수욕장·대금산 등의 관광지와 장목진객사·구영등성·구율포성·이수도패총 등의 유적지가 있다.

 

3) 거제박물관

- 경상남도 거제시 옥포 2동에 있는 사립박물관.

- 19911221일에 김우중(金宇中)이 사재(私財)를 출연하여 만든 거제문화재단에서 설립, 개관하였다. 1992년 문화관광부에 등록한 종합박물관으로서, 거제의 역사와 자료를 수집, 정리, 연구, 전시하고 있다.

 

1,000여 점이 넘는 거제 지역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거제도의 신석기시대부터 6․256․25 동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볼거리를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서 출토된 녹유합(綠釉盒)은 유약의 연구 과정에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그리고 머리에 고깔을 쓰고 있는 토기 그릇의 뚜껑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유물이다. 이외에도 이 지역 출토의 구멍 단지나 각종 석기류는 한반도 남부 지역의 문화와 일본 기타규슈 문화와의 상관관계를 가늠케 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1층의 기획전시실은 각종 전시회를 가질 수 있도록 꾸며져 있으며, 삼국시대의 토기에서 현대의 도자기까지 그 변천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입체 공간에는 디오라마 기법을 이용한 신석기시대의 움집과 거제도 곳곳에 산재해 있는 지석묘가 복원되어 있다. 또한 지심도 앞바다에서 인양된 제2차 대전 당시의 폭격기 랜딩기어가 전시되어 있다.

2층의 민속전시실은 거제도 내의 민속품을 수집하여 원형을 재현하였다. 섬이라는 환경조건으로 반농반어의 생산형태에 따르는 농경과 수산에 관련한 용구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3층의 유물전시실은 거제도의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거제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전시 외에도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대학 외에도 각종 음악회·강연회·사생 대회·고대 생활 체험 캠프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박물관의 사회 교육적 기능을 다하고 있다.

<출처: 거제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240107, 장산야간산행모임 회원 5.

지난 코스 종점인  김영삼대통령 생가와 기념관 주차장에 익숙하게 차를 대고 인증사진을 찍는다.

남파랑길을 걸으며 이곳 거제가 이웃집처럼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봉수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급한 소식을 전하는 전통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평시에는 하나의 불꽃이나 연기,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둘,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셋,

바다에서 적과 접전이 이루어지면 넷,

적이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개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고 한다.

거제 강망산 봉수대 위에서 왜란이 일어났을 때를 상상해 보며

오늘의 바다처럼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지길 빌어본다. 

김영삼대통령생가에서부터 옥포항까지 약 8.3km 구간은

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로 명명하여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2024년 오늘,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첫 승전인 옥포대첩과

출전한 명장들의 이야기가 담긴 둘레길을 걷는다.

이순신 장군과 시공을 뛰어넘어 데이트하듯 이 길을 걷는다니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이순신을 책에서만이 아니라 첫 승리를 한 옥포에서 

장군의 올곧은 뜻을 발로, 가슴으로 새기며 걷는 공부는 정말 뜻깊다는 생각이 든다.

자녀들을 큰 인물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이순신 관련 책을 미리 읽은 후에

이 코스를 꼭 걸어보도록 추천하고 싶다. 

또한 왜군을 겨냥한 화살로 안내판을 만든 거제시의 노력에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이순신 장군뿐만 아니라 옥포대전에 함께 여러 장군들도 이 길 곳곳에 자세히 안내되어 있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도 혼자서 큰 일을 도모하기 어렵다. 

리더와 뜻을 함께하면서 더 강력한 팀이 되고 , 그것이 옥포해전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 

강력한 리더 이순신과 그 휘하의 장군들, 그리고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많은 군사들까지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반짝이는 햇빛과 고운 모래가 펼쳐진 덕포해수욕장의 풍경 속에 앉아 있는 오늘이 참 고맙다.

이순신 장군과 수많은 조상들이 지켜낸 이 땅에서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그 길을 걸으며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도 사랑의 한 표현이라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다가오는 풍경, 햇빛 한 조각, 모래알도 소중하게 여겨진다. 

옥포대첩기념관에 들러 이순신장군과 임진왜란 등 관련 여러 기록물들을 보았다. 

오래 읽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사진을 찍고, 마음에 새기러 다시 한번 적어본다.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가르침 >

1.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어릴 적부터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2. 머리가 나쁘고 늦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스물여덟에 치른 첫 시험에서 낙방하였고 서른둘에야 겨우 과거에 급제하였다.

3. 지위가 낮고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미관말직으로 공직을 시작하였으며, 14년 동안 변방의 말단 수비장교로 돌았다.

4.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정당하지 못한 지시, 명령, 압력에 따르지 아니하여 파면, 두 번의 백의종군, 옥살이를 하였다.

5. 몸이 약하고 아프다고 고민하지 말라. 나는 평생 위장병이 있었으며, 사천재전에서 화살을 맞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 고통스러웠다. 

6.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스스로 병사를 모으고 거북선과 화포를 만들고 논밭을 가꾸고 식량을 스스로 조달하여 23번 싸워 모두 이겼다. 

7.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라. 나는 미관말직으로 전전하다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에 장수가 되어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칠 수 있었다. 

8.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갖지 말라. 나는 오해와 의심 질투 등으로 모든 공을 빼앗기고 백의종군과 옥살이 고문도 받았지만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9. 어렵고 힘들다고 절망하지 말라. 나는 옥살이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백의종군을 하다 통제사로 재임명받아 12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10.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말라. 나는 스물한 살의 아들을 왜적의 칼날에 잃었고, 남은 아들 및 조카들과 전쟁터에 나아가 최악의 상태에서 싸워 이겼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말씀이다. 임진왜란의 결과, 난중일기, 조선실록 등 모든 것이 이를 증명한다. 

옥포대첩기념관 내 기록물 내용 중 이순신 장군의 삶, 장군의 대표 유적지, 임진왜란 중요 해전도,

거북선 모형 등 많은 자료가 있었다. 그중 장군의 명언은 감동적이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사옵니다. (이충무공행록 기록)

죽고자 하면 살고 , 살고자 하면 죽는다.(난중일기 1597년 9월 15일의 기록)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이충무공행록 기록)

 

이순신장군에 대한 세계인의 평가 중 임진왜란에 참전한 왜군 장수 와키사카 야스하루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이순신 장군이 어떤 분이신지 다시금 느끼며 예를 갖춰 존경을 표해 본다. 

 옥포산림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바다에는 한화오션에서 엄청난 크기의 배들이 만들어지고

점점이 떠있는 대규모의 배들도 한가로워 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지킨 후손들이 초일류급 배를 만드는 조선강국이 되어 있음이 자랑스럽다. 

팔랑포 마을도 지나고 옥포항을 향해 가는 바닷길 데크에서 바라본 바다는 너무나 깨끗했다.

바위에 붙은 굴은 또 얼마나 싱싱한지. 

우리가 할 일은 이 나라를, 이 자연을 잘 지키고 가꾸어 발전시켜 나가는 것. 

커다란 우표를 붙여 바다 위의 큰 배를 오대양에 띄워 보내고 싶다. 

바다의 풍경을 해치는 것 같은 조선소의 모습도 오늘은 내 심장을 뜨겁게 펌프질 한다.

공장도 잘 돌고, 많은 사람이 이순신의 후손으로 자랑스럽게 일하면서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아주천부터 시작된 한화오션 남문, 정문, 동문으로의 길고 긴 길을 걸으면서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충무공을 만나고 오는 길이어서 이렇게 넓은 조선소가 가동되고 있음이 오히려 고맙다.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 가는 길에서 만난 광고 가게의 공룡 앞에서 맞짱 뜨며 웃어보았다.

"우리는 공룡보다 수만 배 큰 배를 만드는 나라야. 어디서 감히......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