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작가의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은 이후 나를 사로잡은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많은 작품 중에서 ‘생의 이면’을 읽은 후 줄거리 요약이나 단편적인 감상평이 아니라 작가의 세계가 느껴지도록 원문의 문장을 그대로 적으며 작가에게 다가가 보고 싶었다. 연필을 들고 필사를 하고 싶지만 한 문장씩 타이핑하는 것으로 작품에 대한 경외를 표하고자 한다. 한 권의 소설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옮겨 써서 비약이 심할 수 있다. 언제라도 원본을 읽도록 권한다.
1
청탁을 해온 편집자에게 이미 밝힌 바대로, 나는 이 글의 필자로 적합하지 않다, 나더러 박부길 씨를 이야기하라니……. 솔직히 나는 많이 망설였다. 이유는 명확하다. 나는 그를 잘 모른다.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그럴 경우 불가피하게 끼어들 수밖에 없는 뜬구름 잡는 식의 변죽이나 애매모호한 수사들은 대개의 경우 진실을 왜곡하게 마련이다. 그런 일은 작가를 위해서나 그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해서나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요컨대, 박부길 씨가 살아온 삶의 이력을 그의 소설들과 관련지어 추적해 보라는 편집자의 주문을 받고 내가 그 일의 적자(適者) 일 수 없는 까닭으로 제시한 구실이 그런 것이었다. 혹시 그 편집자가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어서, 나는 한 작가의 문학과 삶을 집중 조명해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는 ‘작가탐구’의 기획에 썩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는 의견을 첨부했다. 그것은 물론 빈말이 아니었다. 작품 뒤에 숨어 있기만 하던 작가를 전면에 내세워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친밀하고 치밀하게 작가의 내면과 외면을 들여다보도록 친절을 베풂으로써 그 기획은 자꾸만 멀어져 가는 문학과 일상인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러한 노력이 거둬들인 결실의 열매를 제시할 수 없는 점이 유감스러운 일이긴 해도.
2
박부길 씨는 두 번 만났는데, 처음 그를 만나러 가던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그날 그는 나를 위해 세 시간을 내주었고, 손수 끓인 커피를 두 잔 대접했다.
두 번째 만남은 첫 번째 만남으로부터 열흘이 지난 후에 이루어졌는데, 그 열흘 동안 나는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남도의 조그만 벽촌을 둘러보고 왔다. 처음에는 그와 동행할 계획이었으나 어쩐 일인지 그는 고향 행을 몹시 꺼려했다. 일이 밀려서라고 그는 말했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그의 표정에서 내가 읽은 것은 기피자의 무겁고 그늘진 고뇌였다. 그 두 번째 만남은 그가 사는 집 근처의 한 식당에서 이루어졌는데, 그는 그날 못 마시는 술을 제법 마시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내 어깨를 도움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3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소나 양들이 풀을 뜯어먹듯이 나는 책을 뜯어먹었던 거지요. 닥치는 대로 우선 집어삼키고, 나중에 되새김질을 하는 그 짐승들처럼 나 역시 허겁지겁 집어넣고 보자는 식이었던가 봐요. 체계적인 독서가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요, 먹을 게 웬만해야 영양 따지고 칼로리 따지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책들요? 한쪽 방에 오래 북은 책들이 제법 있었어요. 대부분 표지가 두껍고 종이색이 누렇게 바랜 그 책들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것이었어요.”
사람이 노출 본능 때문에 글을 쓴다는 말은 거짓이다. 더 정확하게는 위장이다. 사람은 왜곡하기 우해서 글을 쓴다. 현실이 행복해 죽겠는 사람은 한 줄의 글을 쓰고 싶은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 오직 불행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때 그는 펜을 들어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마취제를 주사한다. 독자들 또한 그 마취제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뿐이다.
4
그의 가장 오래된 기억의 층에는,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쓸쓸하고 깊고 어두운 얼굴이 화석처럼 단단하게 들러붙어 있다. 유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수문장처럼 가로막고 서 있는 것이 그 얼굴이고, 따라서 그에게 있어 유년기를 기억해 낸다는 것은 그 화석을 들춰내어 거기 박힌 얼굴을 마주하는 경험과 한 가지이다.. 또 내가 쓰는 이 글 역시 그 얼굴과의 대면 없이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걸 나는 예감한다.
5
담을 짚고 뒤로 돌아가면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크고 오래된 나무였다. 감나무는 6월이 되면 담황색의 꽃을 낸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슬을 맞고 떨어진 감꽃을 주워 먹었다. 가을이 되면 꽃 대신 열매가 떨어졌다. 아직 푸른빛이 남아 있는 떫은 감을 물에 우리면 맛있는 감이 되었다. 다른 군것질거리가 없었던 시골 아이들에게 저절로 땅바닥에 떨어진 감만큼 고마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곳 출입은 그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어른들은 그가 뒤란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 오랫동안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그 금령이 감나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감나무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금지된 나무였다. 그는 그렇게 이해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중에 그가 깨달은 바에 의하면, 금지된 것은 그 땅이었다. 그리고 그 땅에 감나무가 있었을 뿐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았는데도, 남자는 몰골이 흉측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몸에 얼굴이 온통 털투성이였다. 더 무섭고 흉측한 것은 그 남자의 가늘고 앙상한 다리에 매달린 거대한 나무였다. 반쪽으로 쪼갠 기다란 두 개의 나무를 마치 하나처럼 묶어 자물쇠를 채웠는데, 거기에 두 개의 홈이 가로로 파여 있었다. 남자의 다리는 그 두 개의 구멍에 각각 하나씩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죄수들을 가두어 두던 차꼬였다. 차꼬를 차고 있는 남자는 제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차꼬를 끌고 겨우 엉덩이 걸음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박부길이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럽게 스며드는데도 어떻게 아는지, 스르르 문이 열리는 경우가 많았다. 문이 열리고, 차꼬를 찬 남자는 털투성이 얼굴 사이로 깊고 어두운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본다. 쓸쓸하고 선한 눈빛-박부길 씨는 그 눈빛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 눈빛이 바로 그의 기억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인 것이다.
6
나는 할 수 없이 졸업 후 거의 발길을 끊고 있던 대학 도서관으로 가서 힘들게 열람하는 데 성공했다. ‘내 속의 타인’은 그 잡지의 신인 특집으로 맨 앞에 실려 있었는데 촉망받는 젊은 작가 박부길 씨가 피로 쓴 우리 시대의 설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유년을 향한 고통스러운 여행, 부끄러움과 그리움의 이율배반적인 존재로서의 모성, 추방의 모티프를 통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깊고 어두운 탐구, 운운하는 다소 허장성세가 느껴지는 문구가 발문으로 뽑혀 나와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아니다. 아버지는, 내게, 없다. 아버지는 풍문으로만 떠돌아다닌다. 그는 실체가 없다. 그는 없다.
그리고 나는 들었다. 어머니는 종종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옷고름으로 눈물을 훔쳤다. 너의 아버지는 먼 곳에 계시단다. 나는 또 들었다. 너의 아버지는 천재란다. 너의 아버지는 조용한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단다. 너의 아버지는 높은 사람이 되어서 돌아올 것이다. 내 키가 조금 더 컸을 때, 그래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뜻을 이해하게 되었을 무렵 나는 또 들었다. 너의 아버지는 고등 고시 공부를 하고 있단다. 그 공부는 하늘의 별을 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란다. 그래서 오랫동안 집을 나가 있는 거란다. 고등 고시에 붙으면 너의 아버지는 판사가 된단다. 판사는 대통령 말고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란다.
어머니는 없다. 아니, 아버지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없지는 않다. 어머니는, 모든 있는 것들은 없어지게 마련이라는 뜻에서 없다. 그녀는 이제 흔적 속에만 존재한다.
아들을 버리고 제 살길을 찾아간 여자에 대한 소문을 나는 들었다. 영화롭던 시절의 허례만 남은 완고한 집안의 며느리가 어느 날 문득 마을을 떠나 버린 사건은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기에 족했다. 그러나 그 파문은 수상했다. 사람들은 어쩐 일인지 몹시 몸들을 사렸다. 추문의 확산을 즐기려 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 이면의 다른 추문, 또는 내밀한 곡절을 은밀하게 나누는 데 더 신경들을 쓰고 있는 형국이었다.
어느 날, 오래전에 마을을 떠났던 한 젊은이가 성경책과 찬송가와 전도지가 든 가방을 들고 불쑥 찾아왔다. 양복 차림에 구두를 신고 있었고 안경도 끼고 있었다. 상점 맞은편의 집은 주인이 도회지로 떠난 이후로 2년째 버려져 있었는데, 그는 그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지붕에 양철이 얹히고, 뒷산에서 베어 십자 모양으로 깎은 나무가 지붕 위로 솟아올랐다. 그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전도지를 나눠 주고, 두 사람만 모여 있으면 연설을 하려 했다. 밤이면 또 종을 쳤다. 예수의 도는 그렇게 해서 이 마을에 소개되었다.
어느 날, 나는 전도사의 손에 이끌려 인근 도시까지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아침 일찍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읍내로 나갔다. 그와 함께 나는 처음으로 공중목욕탕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그는 나를 시장으로 데려가서 옷도 한 벌 사 입혔다. 나는 어쩐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고 올라탄 버스 안에서야 그는 어쩐 일인지를 암시했다. 그는 말했다.
“너, 주기도문 외울 줄 알지?”
물론 나는 그쯤은 달달 외울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빵을 사이다와 함께 먹으면서 나는 비로소 돌아갈 일을 걱정하였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전도사를 따라나섰었다. 엄마는 나를 얼마나 찾고 있을까. 어른들의 허락도 없이, 전도사를 따라 도시까지 나갔다 온 걸 알면 큰아버지는 또 얼마나 야단을 치실까. 나는 두려웠다. 차라리 이 길로 그냥 집에 들어가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도사가 나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말했다. 어머니가 승낙했다.”
읍내에서 맡겨 놓았던 자전거로 바꿔 타고 돌아왔을 때는 온 마을이 잠들어 있었다. 집에는 불이 꺼져 있고,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어둠 속을 달려 다시 교회로 갔다. 가끔씩 어머니는 교회당에 엎드려 밤을 새우곤 했다. 어머니가 교회당의 마룻바닥에 엎드려 우는 소리를 나는 자주 들었다. 어머니는 눈물이 많았다. 걸핏하면 나는 붙잡고 눈물을 짓곤 했다. 불쌍한 내 새끼....... 그럴 때면 어머니는 내 얼굴을 마구 헤집으며 그렇게 말하곤 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진정으로 말하건대, 나는 어머니의 슬픔을 전혀 헤아릴 수 없었다.
교회당의 맞은편에 있는 상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동네 어른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부르더니 사탕을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런 일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쉽사리 그 사탕이 받아지지가 않았다.
“받아, 이놈아.”
나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이상했다.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무언지 좋지 않은 예감에 사로잡혀서 교회당으로 달려갔다. 내 뒤에다 대고 누군가 끌끌 혀를 찼다.
“네 팔자도 참……. 애비 에미가 차라리 죽기라도 했으면 낫지…….”
어머니는 교회당에도 없었다. 전도사는 내 사정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더니 교회당에 딸린 자기 방에서 자게 해 주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전도사는 내게 밥을 해주었다. 내가 집에 가보겠다고, 엄마를 찾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가려고 했다. 그때서야 그는 말했다.
“밥을 먹고 있으면, 너를 데리러 올 것이다.”
큰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너의 어머니는 자기 갈 길을 갔다. 너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안 된다. 큰어머니가 이제부턴 너의 어머니다. 큰어머니에게 어머니라고 부르고, 나에게 아버지라고 불러라. 너는 여기서 산다.”
나는 그렇게 해서 큰댁 식구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후 여태 한 번도 큰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큰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7
“열심히 해서 너는 꼭 고시에 패스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좀 더 분명하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못다 한 일을 아들이 이루어 내는 것, 그것이 최고의 효도다, 너는 박태성의 자식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럴 경우에 혼란은 가중되었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정말로 판사가 될 것이고, 그러면 그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인지, 판사가 되어야 할 사람은 나이고, 아버지는 실패했다는 뜻인지 잘 분별할 수 없었다. 물론 나는 그런 경우에 의문을 표시했다. 그러나 큰아버지의 말씀은 거기서 한 치도 더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8
뒤란의 남자가 마침내 죽었다. 감나무가 밤새 내린 서리를 맞고 발갛게 익은 감을 서너 개씩 떨어뜨리던 가을날 아침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난 박부길이 가만가만 뒤뜰로 돌아갈 때만 해도, 그는 떨어진 감을 주울 생각만 했고, 뒤란에 무슨 일이 벌어져 있으리라는 상상 같은 것은 할 수가 없었다. 박부길 씨는 그날의 기억을 더듬는 대목에서 또 몹시 망설였다.
“무슨 야릇한 운명인지, 그 장면을 맨 처음 목격한 사람이 저였습니다. 그날따라 눈이 좀 일찍 떠졌던가 봅니다. 이제 막 동이 터오고 있었던가 그랬을 겁니다. 나는 다른 식구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을 것을 확인하고는 별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뒤뜰로 향했습니다. 물론 몸이 반쯤 문지방을 넘어온 채로 그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흘러나온 피가 땅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습니다. 피는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서로 엉겨 붙어 웅크리고 있었지요. 나는 보았습니다. 피는 그의 오른쪽 손목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다른 쪽 손에 들린 것은 어이없게도 손톱깎이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숨 막히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손톱깎이는…….”
왜냐하면 그 손톱깎이는 큰아버지의 책상서랍에 넣어져 있었는데, 그가 그 전날 가져다주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황급히 달려들어 죽은 남자의 손에서 손톱깎이를 빼앗았다. 어찌나
꽉 쥐고 있었던지 손톱깎이는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았다. 남자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질 정도였다.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 났고, 그의 손에는 붉은 피가 묻어났다. 그는 손톱깎이를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뒤란을 빠져나와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게 뛰었다.
상여가 산으로 나기 전날 저녁, 담장 아래에서 구슬을 만지고 있던 박부길의 모습을 한동안이나 쳐다보고 있던 친척 어른이(부음을 듣고 외지에서 온 사람으로, 그에게는 고모가 된다고 했다.) 갑자기 그에게 달려들더니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다. 당연히 그는 어쩐 일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마구 쓰다듬으면서 눈물에 젖어 훌쩍이는 음성으로 말했는데, 그녀의 태도가 너무도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박부길은 잠깐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부길아, 죽은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
그는 물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그는 틀리게 알고 있었다. 어렴풋한 깨우침이 그의 입을 막았다.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불쌍한 것, 그것도 모르고, 그것도 모르고…….”
그녀는 더욱 힘 있게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숨이 막힐 지경이 되어서 그는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쳐야 했다.
상여가 나가던 날, 큰아버지는 뜻밖에도 그를 앞장 세웠다. 그는 다른 친척들과 함께 상여 뒤를 따라 장지까지 갔다. 모두들 숙연한 얼굴들이었고, 이상스럽게 조용했다. 곡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 슬픈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큰아버지가 그의 손에 삽을 쥐여 주었다. 그는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흙을 퍼서 관 위에 뿌리라는 주문을 받고 나서 그는 조금 멈칫거렸다. 사람들은 삥 둘러서서 그가 행동하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야릇한 눈길들 속에서 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적어도 그 순간, 거기 모인 사람들에 의해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구별되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들과 달랐다. 너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네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그가 종종 경험하곤 했던, 세계로부터 이탈되어 나가는 듯한 걷잡을 길 없는 소외감이 그때 처음으로 그를 찾아왔다.
그는 온몸을 빠르게 관통해 가는 전율에 사로잡혀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는데, 그것은 세계를 상대로 맞서 있는 한 왜소한 개체의 외로움이 그를 덮쳤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그 한 방울의 눈물을 타고 몸속의 기가 모조리,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렸다. 그는 맥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필시 사람들은 오해했다.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고, 코를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또 애써 소리 죽인 이런 말도 들렸다.
“불쌍한 것……. 알긴 다 알고 있었던가 보지…….”
“그러게나, 이제 저 아이를 어쩔꼬…….”
9
그는 누구와도 사귀지 않고 자신의 모든 시간을 혼자서 다 사용했다. 언제나 말이 없었고, 어른들에게 인사할 줄도 몰랐다. 그가 제일 싫어한 것은, 그와 마주치면 손을 붙잡고 짠한 눈빛을 노골적으로 보내오는 친척 어른들이나 동네 여자들이었다. 그는 알 것은 다 안다고 자부했다. 그의 앎에 의하면, 세상을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는 되도록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으려 했고, 그 스스로 먼저 사람을 불러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아직도 대인관계가 서투른 편인데,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대화하는 시종 몹시 신경을 쓴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10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읍내까지 20리 길을 걸어서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는 현실 속에 다른 피난처를 설계했다. 그것은 이제까지 그가 몰두해 온 독서 행위와 같은 소극적이고 비유적인 의미로서의 피난처가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세계-고향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진지한 계획을 꾸미고 준비에 착수했다. 그는 돈을 모으고, 지도를 구하고, 버스정류장에 들러 갈 수 있는 곳의 지명을 확인했다. 그 일은 뜻밖으로 간단했다. 언제든지 차만 타면 떠날 수 있었다. 차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 이곳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이곳보다는, 어쨌든…….
그는 마을 복판을 피해 둑길을 택했다. 어느 만큼 걸어가자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왔다. 그는 지체 없이 그 길로 접어들었다. 산길은 비좁았고, 발길에는 이슬 같은 것이 묻어났다. 그의 손은 바지 주머니 속에서 휴대용 성냥을 만지작거렸다. 캐러멜만 한 크기의 작은 성냥갑 속에는 성냥이 서른 개쯤 들어 있었다. 낮에 읍내에서 배회할 때 사둔 것이었다. 아마도 담임선생과 헤어진 후가 아니었던가 싶다.
목적지에 이르러서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무덤 앞이었다. 그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가방 속에서 책과 노트를 꺼내어 무덤 앞에 두고 호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었다. 시간을 끌지 않았다. 그는 곧장 성냥을 켜서 책과 노트에 불을 붙였다. 불길은, 처음에는 수줍은 듯 쭈뼛거리는 눈치 더니 조금 있자 흰 연기들 사이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3월이었고, 해를 넘긴 마른 나뭇잎들은 불을 보자 반갑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불길을 바라보았다. 그의 내면으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받아 오르는 듯했다. 알 수 없는 충만감이 그를 휩쌌다. 뜻밖으로 코끝이 매워 왔다. 그는 그 사태를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몸을 돌려 뛰었다. 산속으로 마구 내달렸다. 발길에 차이는 풀뿌리가 자꾸만 그를 넘어뜨렸다. 몇 번이고 쓰러지면서, 그는 무작정 내달렸다.
고갯마루에 당도했을 때, 그의 숨은 턱에 차 있었고, 그래서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그가 달려온 산 아래쪽에서는 뻘건 불길이 영역을 크게 확대하면서 내달려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서 마을로부터 술렁거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불이야, 불, 산불이 났어요......, 그런 소리가 들리고 횃불이 만들어져 이리저리 우왕좌왕 오가는 듯하더니 산을 향해 급히 올라오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으리라. 젊은이도 있고, 늙은이도 있었으리라. 어쩌면 마을 전체가 잠에서 깨어나 산으로 달려올지 몰랐다. 그의 입가에 스멀스멀 웃음이 고였다. 마을을 굽어보면서 그는 몸의 민감한 부분을 간지럽히는 듯한, 야릇한 쾌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소리 질렀다. 타올라라, 더 타올라라……. 가속도가 붙은 불길은 더 빠르고 더 세차게 달음질쳐 올라왔다.
그는 한 번 더 불이 붙은 선산과 우왕좌왕 소란스러운 마을을 내려다보고 나서 조용히 몸을 돌려세웠다. 그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왔다. 그는 가만히 입술을 움직여서 중얼거렸다.
“그러면 이제 안녕, 내 치욕의 시간들이여. 다시는 너에게로 돌아가지 않으리.”
1966년 9월(15세)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나기까지 박부길 은 자신이 이 도시에 전에 한번 온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예정표에 들어 있는 만남이 얼마나 있을까 보냐.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가 뜻밖으로 헤어진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렇긴 해도 그 만남은 너무나 예기치 않은 것이었다. 점심시간이었고, 하루 중 가장 바빴다. 그는 옆 건물에 세들어 있는 복덕방에 자장면과 볶음밥을 배달해 주고 막 문을 들어서던 참이었다. 그때 마침 조그맣게 열린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고 주방장이 그를 불렀다.
“또 갔다 와야겠다. 형조 너, 민들레 다방 알지? 우동 두 그릇이다.”
그 순간 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단체 손님들 가운데 누군가가 머리를 길게 빼서 밖을 쳐다봤다. 그 사람의 얼굴로 잠깐 동안 놀람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스쳐 갔다. 이윽고 그는 음식 그릇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서서 손짓을 하며 문가로 다가왔다. 형조도 그때 그 남자를 보았다. 고향 마을의 빈한한 교회를 고집으로 지키던 전도사. 한 퇴락한 가문의 며느리를 꿰차고 야반도주했다는 따가운 소문 속의 주인공.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보다 선명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던 남자.
그런데도 그와의 만남은 어쩐 일인지 반갑다기보다 어색했다. 흔해 빠진 비유대로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다.
“형조가 아니냐. 형조구나. 네가 여기 웬일이냐?”
전도사는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렇게 전도사를 만났다. 그는 전도사의 손목을 잡고 어떤 도시의 제법 큰 교회로 따라가 사도신경을 외우고 십계명을 외우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까지도 그는 이곳이 그 도시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전도사는 이전에 비해 몸이 조금 불어나 있었고, 얼굴이나 머리 모양이 더 깔끔해 보였다. 신학 공부를 마치고 상당히 큰 교회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전도사는 박부길이 말하기도 전에, 그가 집을 나왔다는 사실을 눈치채 버렸다.. 그러고는 알 만하다는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 아비어미 없는 어린아이가 받아 내야 했을 눈치와 구박……. 하는 식으로, 그는 오해했다. 그러나 박부길은 상대의 재빠른 오해를 교정해 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전도사의 오해가, 그 오해가 아니었다면 꽤 망설였을 결단을 쉽게 하게 했다.
그는 경찰 공무원의 아내가 된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은 어머니를 전도사를 통해 만났다. 그녀는 전도사가 일하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와의 재회는 그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연방 울음을 토해 내며 자기를 책망하고, 자기 운명을 저주하는 말만 되풀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신경 쓰여서 그는 앉아 있는 자리가 몹시 불편했던 기억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는 어머니가 펑펑 울음을 만들고 있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황폐함과 메마름. 그것은 그 자신만 빼고 다른 모든 이를 놀라게 했다. 특히 그의 어머니를 실망시켰다. 그녀는 아들의 무덤덤함에 놀랐고 두려워졌다. 그 때문에 그녀는 더욱 심한 자책감에 빠졌다.
1967년(16세)
서울로 이주함과 동시에 문강중학교 2학년에 편입.
어머니는 남편인 경찰 공무원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녀의 남편은 제 부인의 전남편 소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그럴 아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위인이었다. 그는 성질이 급했고, 매사에 신경질적이었으며, 가정에서 때때로 폭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전도사의 개입도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딱한 마음에 전도사는 자기가 박부길을 데리고 있겠다는 의견을 내보였지만, 그때 이미 그 또한 가정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고심을 했고, 서울에 있는 먼 친척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거의 오지 않았다. 가끔 편지를 보내왔고, 그 편지에 적힌 기막히게 간절한 사연들이 박부길을 자주 참담하게 했다. 그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가 이렇게 기구한 사연으로 점철되어야 하는 현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어머니의 눈물샘을 잠그는 것이었다.
현실이 평범하지 않으면, 의식도 평범해지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평범하지 않은 현실을 의식의 겉면으로 그대로 노출해 보이는 평범함을 극도로 증오했다.
학교생활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2년을 쉰 데다가 학교 공부를 하는 일에 정나미를 떨어뜨리고 난 후라 서울 아이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건전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하여 공부를 하고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회의가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이 무렵에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라고 하지만, 성실함의 징표 같은 매일매일의 글쓰기는 아니었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어떨 때는 하루에 두 번도 썼지만, 어떨 때는 한 달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적도 있었다. 거기 적은 내용도 그날 있었던 일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은 아니고, 대부분 내면의 수상한 움직임들을 정교하게 포착한 것들이었다. 그 내용만으로는 도대체 그날 이 사람이 무얼 했다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는, 도무지 일기 같지 않은 일기를 썼다. 그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의 문학 수업을 시작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1968년(17세)
그의 어머니는 서른여덟의 나이에 아들을 낳았다. 그 소식을 그는 친척 형으로부터 들었다. 어머니는 직접 이야기해 주지 않았고, 그 형의 부모인 삼촌 내외도 어쩐 일인지 그 소식을 전해 주지 않았다. 그는 이 기대하지 않은 동생의 출현에 별 감흥을 표시하지 않았다. 물론 그 아이는 그와 다른 성을 갖고 태어났다. 이 나라는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도록 되어 있는데, 그 아이의 아버지는 박 씨가 아니었다.
또 하나의 필화 사건은 개교기념일 행사의 하나로 열린 글짓기 대회에서 일어났다. 위문편지 사건이 있고 두 달 만의 일이었다. 이 행사는 전교생이 참가하여 시와 산문과 붓글씨 가운데 어느 하나를 쓰도록 되어 있었는데, 박부길은 산문을 지어냈다. ‘바다, 나의 소망, 아버지’가 그날 산문의 제재였다. 그는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꼭 그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른 두 개의 제목으로 자신이 글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너무 서정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너무 추상적이었다. 그리고 둘 다 너무 상투적이었다. 지난번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는 자신의 글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결과는 심했다. 그는 사흘 후에 또 교무실로 불려 갔다. 이번에 그를 부른 사람은 젊은 국어선생이었는데, 그 옆에는 학생 생활 지도를 맡고 있는 윤리과 담당 선생도 있었다.
“글은, 물론 일차적으로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그 상상력은 현실과 맞물려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는 상상력을 가지고 현실을 초월하고 현실을 비틀기도 하지만, 그러나 객관적인 현실 자체의 부정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상상력을 통해 현실은 승화되어야 하지, 그 반대여서는 안 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상상력의 한계가 아니라, 그러니까 상상력의 방향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아듣지 못하기는 연방 지휘봉을 자기 손바닥에 탁탁 두드리고 있는 윤리 선생 연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기 아들뻘은 되어 보이는 국어과 담당 선생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국어 선생은 앉아 있고, 그는 서 있었는데도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이윽고 윤리 선생님 지휘봉을 들어 내 어깻죽지를 가볍게 내리치면서, 국어 선생의 그 길고 복잡하고 애매한 말들을 간단하게 압축했다.
“그러니까 거짓말로 글을 쓰지 말라는 말이다.”
“아니, 내 이야기는…….”
국어 선생이 다급하게 정정하고 나섰다. 그는 무언가를 몹시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 걸까? 나의 신상? 나의 신상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1969년(18세)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는 친척 집에서 나와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다. 세를 주려고 본채의 뒤편에 날림으로 이어 붙인 작고 초라한, 그래서 한낮에도 빛 한 조각 스며들지 않는, 어둡고 눅눅한 방에서 그는 이때부터 3년, 그리고 나중에 다시 와서 10개월을 살았다. 아무도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이 질 나쁜 방에 대한 그의 특이한 친화의 감정은 각별했다. 이는 일차적으로 그 방과 자아의 동일시로부터 비롯한 것인바, 이에 대한 내면 심리의 미세한 움직임은 그의 미발표 미완성 소설인 ‘지상의 양식’에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방에서 그가 한 일은 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무작정의 책 읽기, 동네에 있는 헌책방에는 별의별 책들이 다 나와 있었다. 그는 학교 가는 걸 제외하고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는데, 유일한 외출이 헌책방 나들이였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씩 그곳에 들렀다. 아 읽은 책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그는 돈을 조금 주고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독서도 취미냐는 별 신통치도 않는 반문이 한때 퍽 재치 있는 화술인 것처럼 통용된 적이 있지만, 그에게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버릇이라는 사실이 여러 군데서 진술되었다. 예컨대 그의 독서는, 아파트 안에 하루 종일 갇혀 있는 할머니가 딱히 할 일이 없어서 한 통의 차를 다 마셔 버렸다는 경우와 유사하다. 목표도 체계도 반추도 없는 맹목의 게걸스러움, 그것은 그가 세상에 대해 문을 닫은 결과였고, 또 그 동인이기도 했다. 세상은 그가 눌러앉은 방만큼 작아졌고, 그보다 더 큰 문밖의 세상은 거짓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 참혹한 가난과 외로움을 극복해 보려는 어떠한 시도도 해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에 대해 비난할 권리가 없다. 그래서 그는 비난하는 대신 혐오하거나 기피했다. 말하자면 초월하려고 했다.
1970년(19세)
그는 이해에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아니다. 여자를 만난 것이 먼저다. 그 여자와의 만남이 그를 종교로 이끌었다. 그의 내부에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뜻밖의 열정의 분출, 그보다 나이 많은 이 여자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 새로운 길을 열게 한다.
그 사건의 전말은 ‘지상의 양식’에 비교적 상세히 재현되어 있다 ‘지상의 양식’은 이제까지 아무 지면에도 발표된 적이 없는 미완성 원고인데, 그가 처음 쓴 소설 형식의 자기 고백이다. 씌어진 분량만 33백 장이 넘는다.
<지상의 양식>
일찍부터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떤 여자와의 사랑을 꿈꾸곤 했다. 꿈꾸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이 단어 속에는 꿈꾸는 행위자의 능동성이 몸을 웅크린 채 숨어 있다. 그것은 내가 말하려고 하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주어는 나가 아니다. 나는 첫 문장을 고쳐 써야 한다. 나이 많은 여자와의 사랑은, 그렇다, 나에게 예감된 것이다.
모든 예감에 비극의 냄새가 묻어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숙명의 울림 때문이다. 예감은 열람이 금지된 숙명의 세계를 부지불식간에 엿보고 만 자의 머리 위에 그 부정에 대한 징벌로 떨어지는 벼락, 그 벼락 같은 천재비변의 떨림이다. 그래서 숙명은 예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모든 숙명은 비극의 광배를 두르고 있게 마련이다. 숙명적이라는 말이 비극적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1
나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한 번도 낭만주의라는 것의 실체를 만져 본 적이 없다. 나는 내 손으로 만져 보지 않은 것은 그 어느 것도 신뢰하지 않는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바이블의 주인공은 말한다. 나는 그런 이유 때문에도 복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도마(Thomas)의 편이다.
낭만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기반이라는 것을 나는 갖지 못했다. 그런 기반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어느 것도 허공에 뿌리를 내리지는 않는다. 요컨대 낭만주의자는 낭만주의라는 일정한 묘상에서 키워져 모종 된 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묘상의 모종은 적어도 두 가지의 기관을 몸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 하나는 아름다움을 위하는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로움을 수용하는 기능이다. 내가 낭만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기반의 부재를 말하는 것은 그 두 가지의 감각을 몸에 익힐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선 내게는 유년기가 없었다. 무슨 뜻이냐고 의아해할 필요는 없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도 진정으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나의 기억은 아버지의 매를 불러내지 못한다. 어머니의 품도 마찬가지로 증거 하지 못한다. 그들은 내 기억의 가장 오래된 층에서부터 부재한다. 내가 그 뜻을 정통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몇 개의 단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동심이다.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을 때, 아마도 내 알량한 글재주를 치하한다는 뜻으로 동화를 한번 써보라고 권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요청이 너무나 낯설고 믿어지지 않아서 한참 동안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나를 놀리는가, 그런 생각까지 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내가 한 권의 동화책도 읽지 못하고 자랐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1-2
열여섯 살부터 살아 낸 서울 생활은, 조금 엄살을 섞어서 말하면, 끔찍하다. 떠오르는 것은 참혹한 가난과 그보다 배는 참혹한 외로움, 그리고 돌이키기 힘든 이 세상에 대한 가시 돋친 불만과 적의……. 그런 것들로 점철된 나날이었다. 하기야 그 이전부터 삶은 화해하기 힘든 대상이었다. 나는 세상을 요리하는 데 너무 서툴렀다. 아니, 세상이 요리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다. 그 때문에 나의 삶은 한 번도 가벼워 본 적이 없었다.
자, 그러면 어떤 길이 있는가? 나는 망설이고 있다. 길을 못 찾아서? 그건 아니다. 나는 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서로 대립하는 층들의 싸움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느낀다. 내 버림받은 시절에 대한 회상은 결국 나의 글을 심하게 쿨럭거리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내 기억의 정수리에 깊숙이 박힌, 그리하여 아마도 두껍고 엷은 내 복잡한 심리기제의 층들을 작살처럼 관통하고 있을, 결정적인 단 하나의 인상만을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할 작정이다. 그것은 한 여자에 대한 인상이고, 또 10대 후반의 한 남자가 만난 한 여자에 대한 인상이다.
1-3
나는 그때 너무 커버렸던가. 적어도 생각은 그렇게 했었다. 어쩌면 생각뿐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었고, 그래서 늘 행복하지 못했다. 생각이 많은 것은 무언가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려는 욕망이 많은 생각을 만든다. 하지만 생각은 생산 능력이 없다. 그래서 결핍의 정도는 더욱 심해지고, 세상과의 불화감은 더욱 증폭된다. 그 증폭된 불화감은 또 더 복잡한 생각의 밑천이 된다. 끝도 없는 악순환. 생각이 많은 사람은 세상을 쉽게 믿지 않고, 세상은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따돌림의 대상이 된, 생각이 많은 사람은 복수하듯 세상을 따돌릴 채비를 한다. 거기서 다른 사람에 비해 자기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돌출한다.
1-4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무리 무의미하고 무의시적으로 보이는 사소한 버릇 하나에도 의식 깊이 잠재된 어떤 동기인가가 숨어 있게 마련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어찌 젊은 시절의 독서 행위를 그렇게 매도하는가. 자학인가? 위악? 아니면 ‘감춤으로써 드러냄’의 처세술을 실연하는 것인가? 그런 주장이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굳이 찾자면, 그런 주장에 대한 대답도 물론 없지 않다. 내 게걸스러운 남독의 버릇에 숨은 동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하나는 피난이고, 다른 하나는 은밀한 수련이다.
1-5
이해한다는 것은 열쇠를 가지고 문을 따는 행위와 같다. 그것이 시작이다. 시작 없는 일의 진행은 있을 수 없다. 문을 열지 않고는 누구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그런 생각을 세상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그와 같은 입장의 차이가 불화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그의 진단은 절반 정도만 맞다. 나의 증세는 대인 공포증이 아니라, 대인 혐오증 내지는 대인 기피증이라고 불러야 한다. 사람은 내게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일 뿐이다.
1-6
내가 살던 자취방은 한낮에도 이상스레 어두웠다. 세를 주려고 본체의 뒤편에 날림으로 이어 붙인 작고 초라한 방이었다. 금방이라도 폭삭 주저앉을 듯 낮은 천장, 하루 종일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북향으로, 그나마도 벽에 맞대어 뚫린 손바닥만 한 창문, 언제나 습기가 베어 눅눅한 느낌을 주는 방바닥.... 그곳에 들어가면 낮에도 전깃불을 켜야 했다. 그러나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불을 켜지 않고 살았다. 심지어는 밤에도 불을 잘 켜지 않았다. 나는 어둠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어둠의 넓고 깊은 품에 푹 잠기기를 좋아했다. 어둠은 얼마나 아늑한지, 얼마나 아늑하고 편안한지. 꼭 가슴까지 잠기는 푹신한 소파만 같았다. 나는 자주 그 소파에 파묻혀 오랫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등거리며 지냈다. 시원(始原)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솟아 나오는 이런저런 생각들의 수림 속을 헤쳐다니기도 하고, 그런 채로 그냥 잠에 빠져들기도 하고, 그러다가 심란스러운 꿈을 꾸기도 했다.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대로, 그 어두운 방은, 말하자면 내 자아의 투사에 다름 아니었다. 내가 웅크리고 앉아 지낸 그 어두운 공간은 실상 나의 자폐적인 내부였던 것이다. 병적인 자의식의 과잉, 세상과의 불화, 그리고 그 결과로서, 또는 원인으로서 자아의 지하굴 속에 칩거하는 행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곳을 ‘지하의 세계’라고 불렀다. 여기 지하는, 그곳이 지상이 아니라는 뜻이므로 하늘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 적은 아무 데도 없는데 고통은 도처에 널려 있다. 나는 그 책을 내 방에 내 방에 깔린 어둠의 눈을 빌려 아주 조금씩 읽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 조그만 문고판 책의 행간에 무수히 그어진 붉은 줄들은 공감의 표시였을 것이다. 공감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받은 인상은 그보다 강렬한 것이었다. 예컨대 동지 의식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로부터도 지지받지 못하는 이단의 내가 여기에 또 있구나, 하는 그런 느낌.
1-7
그러나 나는 나와 같은 표적을 가진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따라서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누구의 어떤 지원도 받지 않고 혼자서 거대한 하나의 적대적인 세계에 대항하는 일은 나를 탈진시켰다. 나는 언제나 지쳐 있었고, 사소한 일로도 쉽게 상처를 받았다. 사람들에게 나는 신경질적이고 폐쇄적이며 종잡을 수 없는 위인으로 비쳤다. 나의 작고 어두운 방은 나의 유일한 도피처였다. 나는 내 자아의 지하방 속으로 자꾸만 숨어들었고, 그곳의 어둠 속에서만 평화를 느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질감이 매우 깊고 끈적끈적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 외로움은 동형의 형질을 가진 누군가를 갈구하는 애 욕망의 이면에, 또는 그 변두리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방 안의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있을 때 불쑥 쳐들어온 그 외로움에서는 이상하게 성욕의 냄새가 났다. 감상이 아니라 육체가 외로움을 타고 있다고 느꼈을 때의 그 난감함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감상은 언제든지 사치스러울 수 있다. 감상으로 라면 얼마든지 외로울 수 있다. 그러나 육체는 징그럽다. 육체적 외로움은 슬프고 욕스럽다. 그것은 성인의 외로움이었고, 그것이 내 몸에서 발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끔찍했다.
2-1
밤이 깊은 시간의 중지도를 어슬렁거리면서,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고 앉아 있는 남자와 여자의 희미한 실루엣을 훔쳐보면서, 그들이 주고받는, 무슨 뜻인지 잘 들리지 않는 나지막한 이야깃소리에 애써 귀 기울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간절하게 나와 동질의 표적을 가진 한 사람의 동지를 그리워했다. 그런 시간에는 이상하게 그 동지의 모습이 여성으로 그려졌다. 아마도 외로움 때문이었으리라. 열여덟의 몸에 달라붙은 질긴 외로움이 대극의 성을 그리워하게 한 것이리라. 저 어둠 가운데서 그녀가 아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내 앞에 나타날 것 같은 기대로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을 하곤 했다.
2-2
아주 짧은 시간의 대화 후에 곧장 싫증을 느낀 나는 나를 밤의 중지도로 불러낸 곤혹스러운 몸의 외로움을 저주하고는 했다. 차라리 외로우라. 차라리 너의 지하의 방에 더 깊은 굴을 파고 들어가 누우라……. 속으로 그렇게 외치곤 했다. 그러고는 자리를 털고 서둘러 일어날 기회만을 노렸다. 고양될 대로 고양된 나의 오만한 자의식은 그들을 천박한 통속주의자로 매도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2-3
그럴 때면 생각은 한 가지로 몰렸다. 그들은 나의 상대가 아니다. 나의 상대는 따로 있다. 나는 단순한 말동무나 길동무가 아니라 정신의 동반자, 영혼의 동지를 기다리고 있다. 나보다 나이 든 여자와의 사랑을 숙명적으로 예감하곤 하는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2-4
나는 한 달에 한 번, 고추장에 설탕을 넣어 볶은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나의 자취방을 찾아왔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내 방에 상이 차려져 있고, 볶은 돼지고기가 프라이팬째 상 위에 올려져 있고는 했다. 그리고 상다리에 허리가 눌려 달아나지 못하고 있는,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곧 제 길을 찾아 날아가 버릴 몇 장의 지폐. 그것이 내 한 달 동안의 생활비였다. 그 두 가지, 상다리에 눌린 채 놓여 있는 얼마간의 돈과 프라이팬에 들어 있는 달착지근한 돼지고기 볶음이 어머니가 내 방에 다녀갔다는 흔적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돼지고기 볶음의 독특한 맛은 내 기억 속에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나는 그 냄새에서 어머니를,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그 냄새를 연상할 정도이다.
3-1
그날 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하늘은 시종 가느다란 비를 뿌리고 있었다. 국어 담당 선생은 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를 는개라고 분류했다. 그 분류에 따르자면 아마 는개비였을 것이다. 아침부터 그렇게 고운 결의 비가 흩뿌리더니 밤늦게까지 그치지 않았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 비를 맞은 채 한강 다리를 건너갔었다.
나는 이 파격적으로 낯선 경험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나는 충격 때문에 나의 신체가 빳빳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불거져 나오는 듯했다. 한꺼번에 버무려진 수치와 분노와 울분과 슬픔과 굴욕과 절망감이 그런 식의 신체 반응을 유도해 냈다. 그리고 마침내 작자가 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내 입술 사이로 냄새나는 혀를 들이밀었을 때, 나의 굴욕감은 절정에 이르렀고, 나의 신체는 더 이상 압박과 긴장을 견딜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의식은 신체로 이어지는 끈을 스스로 끊었다. 작자가 놀라며 막대기처럼 빳빳해진 나의 몸에서 황급히 손을 놓았다. 나는 빗물이 질퍽하게 고인 풀밭 위에 첨버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3-2
진실이 반드시 사실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은 사실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내가 어떤 글을 읽다가 붉은 볼펜으로 줄을 그었으며, 그 붉은 줄을 여태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무슨 뜻이냐 하면, 그 책의 저자가 조이스라고 할 때, 제임스 조이스를 빌려서 발언한다는 뜻이다. 조이스를 읽음으로써 비로소 세상이 악몽임을 깨달은 것이 아니다. 나는 붉은 볼펜으로 줄을 그었다. 그것은, 그를 알기 전 부터 이 세상에서의 나의 삶이 바동거리는 악몽에 다름 아님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제임스 조이스를 빌려 내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임스 조이스에게서 내 말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내 말을 먼저, 대신해 버린 것이다.
3-3
나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를 굴욕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작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고 의식을 잃은 나를 비가 내리는 풀밭에 그대로 방치하고 달아나 버렸다. 그는, 내가 죽은 것으로 단정한 것일까. 그래서 겁을 집어먹고 몸을 피해 버린 것일까. 그렇게 생각되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되는 것일까. 작자의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장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었다. 이 벌거벗은 폭력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어떻게 해서든 빨리 안온한 내 방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의 어두움 방 안에 몸을 눕히고 할 수 있는 한 깊이 침잠하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내가 원하고 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약간 비틀거리기까지 하면서 굴욕의 섬을 가로질러 건너갔다.
나는 서서히 몰려오는 추위 때문에 덜덜 몸을 떨면서 파랗게 언 입술로 중얼거렸다.
“나는 이 세상에 잘못 보내졌다. 나는, 지금, 너무 외롭다.”
그렇게 발음하는 순간, 나는 정말로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나의 전신을 감싸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단어를 입속에서 굴려 보았다. 나는, 너무 외롭다. 그러자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고 했다. 나처럼 이 세상에 잘못 보내진 나의 형제, 나와 동일한 표적을 소유한 나의 동지, 나와 원형질이 같은 단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 미지의 대상을 향한 그리움에 떠밀려, 턱도 없는 기대를 품고 이 치욕의 섬으로 기어들었었다. 그 그리움이 결국 지울 수 없는 굴욕을 체험하게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너무 부끄럽고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다리의 난간을 붙잡고 서서 출렁이는 검은 강물을 향해 마구 소리 질렀다. 슬프고 외로운 짐승의 외마디 울부짖음이 길게 꼬리를 늘이고 수면 위를 달려갔다.
3-4
내가 처한 상황을 일깨워 준 것은 그 당당한 호루라기 소리였다. 호루라기 소리는 현실의 소리였다. 그 소리는 나로 하여금 현실의 상황에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어떻게? 나는 통금 이후의 호루라기 소리를 그때 처음 들었는데, 그것은 공포를 동반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내게 무서움의 전령처럼 들렸다. 예측할 수 없었던 무서움. 나는 그 즉시 내가 느끼는 무서움의 근원을 이해하고 말았다.
나를 뒤쫓는 호루라기 소리가 아주 가까이까지 접근했을 때, 나는 제법 큰 건물의 담을 막 돌아가고 있었는데, 숨이 너무 차서 더 이상 달리기가 어려운 상태에 빠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아무 데나 쓰러져버리고 싶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건물의 한쪽에 붙은 조그만 쪽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을 부딪쳐 보았다 운 좋게도 문은 잠겨 있지가 않았다. 나는 탄환처럼 문 안으로 쏠려 들어가 바닥에 박혔다. 나는 헉 소리와 함께 빗물이 고인 시멘트 바닥에 찌그러진 깡통처럼 쓰러졌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나는 눈앞에서 하늘이 하얗게 연소되어 가는 그림을 보았다. 머릿속이 몽롱해지고 가슴속이 콱 막혀 왔다. 의식이 가물가물한 속에서도 호루라기 소리가 조금씩 멀어져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3-5
나는 어떤 소리인가를 들었다. 바닥에 누운 채로 나의 귀는 한동안 호루라기 소리를 쫓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가면서 답답하게 막혔던 가슴이 조금씩 풀려 나가는 듯했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하늘에는 당연히 별이 없었다. 어떤 음악 소리인가가 들려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희미한 의식의 그물망 사이로 아주 맑고 고운 피아노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나는 하늘에서 별을 찾고 있었는데, 찾는 별은 보이지 않고 느닷없이 그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음악 소리를 별이 내는 소리로 착각했다. 순간적이지만 하늘 어딘가에 숨어 있는 별이 신호를 보내온 것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창가로 다가가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넓은 실내에 긴 의자들이 나란히 줄을 이루고 서 있었다. 천장 이곳저곳에 달린 구형의 전등들 가운데 앞쪽 두 개에만 불이 들어와 있었다. 피아노는 그 전등 바로 아래 비스듬하게 놓여 있었고, 피아노 앞에는 한 사람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밤색의 헐렁한 스웨터 위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옆모습이 흡사 그림처럼 보였다. 여자였다. 건반을 두드리는 손의 움직임에 따라 아주 느리게 상체가 좌우로 흔들렸고, 그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맑고 그윽한 음악이 꽃처럼 피어났다. 그녀의 손은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올리는 길고 푸른 가지였다. 나는 그곳으로부터 돌연 향기를 맡았다. 향기는 나의 뇌수로 파고 들어와 마취시켰다. 나는 넋을 잃고 그 향기에 몰두했다.
3-6
발걸음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윽고 그녀가 내 곁에 와 섰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게로 다가온 것은 어떤 향기였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사람을 사로잡는, 깨끗하고 순수한 빛깔의 향기를 나는 맡았다. 들판을 달리다가 넘어져 풀꽃에 코를 박고 누웠을 때 저런 향내가 났었다. 어느 신새벽 산사에서 잠을 설치고 창문을 열었을 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저 향내가 날아들고 있었다. 그 향기의 유혹은 얼마나 아득하던지. 얼마나 형언할 수 없는 절망의 심연이던지, 나는 그때 알았다. 순수야말로 가장 큰 유혹이라는 것을. 순수한 것일수록 못 참을 유혹이라는 것을. 수도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가장 큰 유혹에 매혹당해 작고 사소한 유혹들을 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유혹과 싸우는 자들이 아니라 유혹에 투항한 자들이다. 하나의 큰 유혹에 항복함으로써 사소한 여러 유혹들을 일거에 무찌를 자들이다. 그녀의 향기는 내게 그런 사념들을 불러일으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천 년이 지나간 듯했고, 한편으로는 아예 모든 시간이 얼어붙은 것처럼도 생각되었다. 발걸음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엷어져 가는 향기를 통해 그녀가 마침내 내 자리로부터 떠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러고도 한동안 나는 눈을 뜨지 못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싶지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평화로움이 나를 감쌌다. 나는 음악과 향기 속에 뒤섞여 혼몽해졌다. 음악과 향기와 자의식의 혼연일체, 어이없게도 나는 그곳에서 신비를 체험했다.
4-1
사흘을 앓고 다시 밤이 되었을 때 나는 교회당에 있었다. 억제할 수 없는 힘이 나의 등을 떠밀었다. 약 기운에 떠밀려 나락을 알 수 없는 잠의 벼랑으로 떨어져 내리면서도 나는 시종 그 피아노곡을 듣고 있었다. 희고 긴 손가락이 춤추듯 너울거리며 건반을 누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그곳에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지난밤에 내가 들었던 그 경이로운 곡이었다. 그날 이후 약 기운에 취해 비몽사몽 하면서 낮밤 없이 듣던 곡이었다. 그 음악은 얼마나 그녀와 잘 어울리던지. 그녀는 그 음악의 형상인 듯했고, 음악은 그녀의 신경인 듯했다. 나의 내면은 다시금 그녀의 선율에 따라 조율된 정신으로 춤추기 시작했다.
하나의 다짐 같은 예감이 왔다. 그녀는 이미 나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녀의 곁을 절대로 떠나지 못할 것이다.
4-2
내가 그런 순간에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상황의 지속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진전? 둘 다였다. 사태의 변화를 바라는 막연한 기대를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 무언가가 부끄러움, 또는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할 사정은 없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성급한 나의 욕망을 향해 물었다. 자,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말해 보아라. 그녀를 어디로 이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러고는 타일렀다. 해갈의 물 한 방울도 준비해 두지 않고서 목마른 사막으로 나를 끌고 가지 마라. 욕망아, 너는 어쩌면 그렇게 갈증에 허덕이기만 하느냐. 이곳에 머물러라……. 그리하여 오랫동안 표면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착오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근거 없는 행동이야 있을 리 없겠지만, 지기 행동의 근거를 똑바로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 나는 나 자신이면서 나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하나의 단순한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행동의 근거는 무엇인가, 하고 질문하고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나 또한 그 수많은 나 가운데 하나의 나에 불과할 뿐이다.
4-3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 바로 위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열린 문은 조금 전에 내가 들어온 뒷문이었던 것이다. 어둠 속이라 분명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윤곽만으로도 그녀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갑자기 나의 얼굴 위로 환한 불빛이 떨어졌다. 나는 기습을 받고 순간적으로 눈을 찌푸렸다. 불빛은 상대방의 손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의 얼굴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웬 놈이냐?”
남자처럼 두꺼웠지만, 여자라는 걸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나이도 들 만큼 든 것 같았다. 적어도 50은 되지 않았을까. 작정하고 들어온 듯, 그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경계심과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사나움이 함께 묻어 있었다. ‘웬 놈이냐’는 다그침은 ‘누구세요’라는 질문과 얼마나 다른가, 상대가 ‘누구세요’를 택하지 않고 ‘웬 놈이냐’를 택한 것은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시사한다. 자신이 판단한 정황에 대한 자신감이 그것이다. 그렇게 말할 만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감 없이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 여자는 나를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여자는 나를 비난하고 있다. 나는 갑자기 사악한 범죄 행위라도 저지르다 현장에서 들킨 사람처럼 공포를 느꼈다.
“웬 놈이기에 밤마다 수상한 짓이냐?”
“피아노 소리를 들으려고, 나는 그저…….”
“뭣이 어째. 이거 영 안 되겠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잠깐만요, 어머니. 제가 이야기를 할게요.”
그녀가 재차 이렇게 말했고, 그때서야 나의 멱살을 쥐었던 우악스러운 손이 풀려 나갔다. 괜찮겠니? 어쩌고 하는 근심 섞인 질문이 이어지고, 그리고 나를 향해 한 번 더 위협조의 다짐을 해보인 다음 중년 여인은 뒤로 물러났다.
“말을 해봐, 너는 벌써 여러 날 밤, 이곳을 찾아왔어. 우리 교회에 다니는 신자 같지도 않았고, 또 기도를 하러 온 것 같지도 않았어, 내가 너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 자연스럽잖아?”
그녀는 의심이라고 말하지 않고 궁금하다고 말했다.
“말해봐, 무슨 할 말이 있지? 학생 같은데, 맞지? 무슨 고민이라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니?”
“피아노 소리가 좋아서요.”
나는 문득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러고는 스스로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말의 내용 때문이라기보다는,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빠져나왔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다음으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녀의 침묵이었다. 내 말이 끝난 후 그녀는 곧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매우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그러자 내가 혹시 말을 잘못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혹시 마음이 상하기라도 한 게 아닐까, 갑자기 걱정스러워졌다. 그런 걱정은 엉뚱한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나의 위태로운 한마디의 말을 보수하기 위해 두서없는 여러 마디의 땜질용 말들이 동원되기에 이른 사태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4-4
그녀의 이름이 종단임을 알게 되었다는 걸 그날의 소득으로 쳐야 할지.
떠밀려 나오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름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은 어떤 사물에 대한 가장 제한적인 정의이다.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편의적으로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쓰는 것이 인식의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은 최악의 방법이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구별하기 위해서이지 인식하기 위해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구별을 통하지 않고는 인식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이름을 사용한다. 그러면 구별할 필요가 없을 때는 어떤가. 구별함 없이도 이미 총체적인 인식에 이르러 있을 경우에 이름을 알고 부른다고 하는 것은 무슨 유익이 있을까. 오히려 그 새로운 이름이 참된 인식을 방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 경우가 그랬다.
나는 그녀를 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이제껏 그녀의 이름을 모르고도 나는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보라, 나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녀’라는 대명사만으로 족했다. 그녀라고 발음하는 순간, 수많은 불특정 한 그녀들의 숲에서 단 하나의 그녀가 떠오른다. 유일한 ‘그녀’ 그런데 이 이름, 종단은 나의 앎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그 어딘지 촌스럽고 막 만들어 낸 것 같은 여자의 이름은 내가 인식하고 있는 그녀의 초상에 조금 흠집을 냈다. 다른 이름, 보다 세련되고 고상한 이름을 기대했다는 뜻은 아니다. 설령 그런 이름이 불리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느낀 실망감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 말은 아무 이름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떤 이름도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녀를 드러내지는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4-5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피아노 앞을 물러 나온 그녀가 뒤를 바라보고 잠깐 멈칫거렸다. 그녀가 내게로 온다면, 만일에 다시 말을 하게 된다면……. 나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그녀에게 할 말들을 궁리했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주관적인 동지의식을 어떻게 그녀에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렵고 난처했다. 거기다 말들은 또 얼마나 불완전한가. 이 말을 붙잡으면 저 말이 실해 보이고, 그래서 저 말이 낫겠다 싶어 그걸 내보내려고 하면 또 다른 말이 불쑥 고개를 쳐드는 식이었다. 궁리를 하면 할수록 이것도 저것도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완벽한 말을 얻으려는 욕심은 결국 아무 말도 선택하지 못하게 했다. 말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을 하는 순간 진실은 탈락되고 마는 것을. 나중에는 그런 지경에 까지 빠지고 말았다.
4-6
열정이 무섭게 타올랐다. 내 속에 그런 것이 있었던가. 그것은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했다. 내 영혼은 하나의 방향을 잡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돌진해 나갔다. 밤마다 꿈을 꾸었고, 깨어나면 편지를 썼다. 나름대로 간절한 심정이 설익은 채 옮겨진 그 글들 가운데 일부는 나중에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편지들은 내 일기장 속에 묵혀 있다가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때로 나는 꿈을 이용하여 대담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있고, 나는 그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맨발에 입술을 대었다. 입술 끝으로부터 시작되어 타는 듯한 전율이 온몸을 할퀴고 지나갔다. 어떤 때는 역할이 바뀌기도 했다. 그녀의 입술은 부드럽고 차가웠다. 차가운 입술의 섬뜩한 황홀함이라니. 그런 상상들 속에서 나의 정신은 한 없이 아득해지곤 했다. 어둠은 깊어서 나의 부끄러운 의식을 적당히 가려 주었다 반투명의 세계 속에 꿈으로 위장된 욕망의 발현. 이제 알겠다. 나는 사로잡혔다. 나는 그녀에게서 놓여나지 못할 것이다. 아, 사랑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낯선가. 나는 그 단어가 내쏘는 자장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달리 대처할 말이 없다면, 어쩔 것인가. 사랑이라고 이름할밖에.
5-1
어머니가 다녀갔다. 돼지고기 볶음과 한 달 치 돈봉투가 어머니의 흔적이었다. 그것들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나는 처음으로 돼지고기가 놓인 상 앞에서 울었다. 밥이, 밥을 먹어야 하는 인간이, 밥을 먹기 위해 비순수로 무장해야 하는 현실이 눈물을 흘리게 했다. 삶은 얼마나 쓸쓸한가. 얼마나 참혹하게 슬픈가. 그런 식의 어처주니 없는 감상들이 문학적으로 솟구쳤다. 나는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5-2
나는 쭈뼛쭈뼛하며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입구에 서 있던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싱글거리며 나를 불러 세웠다.
“처음 왔어요? 이층 교육관으로 올라가세요. 학생 예배는 그곳에서 있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내 앞으로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예배 순서 따위가 적힌 주보였다. 나는 그걸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입구에 책상이 놓여 있고, 그 앞에 두 명의 학생이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여자였고, 한 명은 남자였다. 남자는 책상에 엎드려 무언가를 쓰고 있었고, 여자는 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교육관이라고 쓰인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아니다, 나는 들어가려고 했다. 들어가려고 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확인할 때까지 설마 그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는 껄걸 웃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반장이었다. 반장은 내 손을 잡고 과장되게 흔들며 ‘잘 왔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면서 또 경쾌하게 웃기를 잊지 않았다. 마치 자기 집인 양했다. 그의 그런 태도가 나를 의혹 속으로 몰고 갔다. 이자의 저 눈 같은 밝음의 바탕은 바로 이 종교심이었던가. 이 종교가 작자를 그렇게 늘 시도 때도 없이 쾌활하게 만들었던가. 그의 손에 내 손을 잡혀 주고 서서 나는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는 나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가 속한 세계의 대표자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와 같아질 수 없다는 믿음이 오래전부터 나를 지배해 왔었다. 그것은 내가 그때까지 견지해 온 최소한의, 안간힘의 고집이요,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그녀’를 형성한 자리에 그가 있을 수 있는가. 이 종교는 어떻게 그와 그녀를 동시에 형성할 수 있는가. 하나의 믿음이 어떻게 저렇듯 상이한 인격을 포용할 수 있는가. 그녀의 세계에 어떻게 그가 들어와 있을 수 있는가. 이 세계의 실체는 그인가, 그녀인가.
5-3
“다른 세계는 잘 알지 못해. 나는 여태 교회에서만 자랐거든.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고 싶어......”
성경 공부가 끝나 갈 무렵에 그녀의 목소리가 내 혼곤한 청각을 깨웠다. 학생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이 교회 목사의 딸인가, 막연하게 짐작해 온 바였으므로 나는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기도를 하고, 피아노를 치고, 꽃병의 물을 갈아주고, 교회당을 청소하고, 또 너희들과 성경 공부를 하고......”
“하지만 결혼은 하실 거잖아요?”
한 남학생이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나머지 아이들도 동일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엉뚱한 질문 앞에서도 별로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말을 중단하고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녀의 그런 침착함이 나름대로의 확고한 신념에 의해 밑받침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물론 하겠지, 하지만 그 경우에도 내 계획은 변하지 않을 거야. 나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한 사람과 결혼할 작정이거든.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어.”
5-4
독서토론인가를 준비하느라 어수선한 사이에 그녀가 반장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을 나는 또 우연히 목격했다. 그들은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반장은 연방 쾌활하게 웃으며 내가 앉아 있는 쪽을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그때의 그의 우쭐한 표정이라니.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거기서 그만 더 이상 참아 낼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아마도 자격지심이었을 것이다.
5-5
-그렇게 쉽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쉽게 포기될 수 있었다면 숙명론까지 끌어들인 그 무서운 사랑에 대한 예감은 무어지? 알맹이 없는 과대 포장? 감정의 허풍? 그럴 수 있는가?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어.
-나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야. 꼭 그래야 하는 것인지 회의도 있었고, 열정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내리면 그곳에 무엇이 있을 것 같아? 그곳에 옹졸한 자아의 어두컴컴한 방이 펼쳐져 있었다고 말하면 조금 해명이 될까? 나는 그 자아의 방 깊숙한 곳으로 몸과 정신을 욱여넣는 길밖에 알지 못했다고 하면?
6-1
“성적이 많이 떨어졌더구나. 이젠 고집 부리지 말자.”
이윽고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아, 그 소리로구나. 나는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어머니가 나의 성적을 화제로 삼고 있지 않다는 건 너무나 분명했다.
“진열이 아빠도 허락했다. 정말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제 어머니와 나를 연결하고 있는 아주 가느다란 끈조차 끊어 버릴 때가 되었음을 인지했다. 이젠 돼지고기 볶음 요리도 기대해서는 안 되고, 돈봉투도 더 이상 받으면 안 될 때가 가까워 온 것이다. 그것은 벌써부터 키워 온 예감이었다. 어쩌면 그 시행일을 자꾸만 늦춰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것, 마쳐야 할 학업이 남았다는 것, 그런 것들이 유보의 조건이 되었다.
나는 슬픈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미 새로운 두 남매의 어머니이고, 한없이 엄한 경찰 공무원의 아내가 되어 있는 어머니에게 나는 너무 오랫동안 짐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그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한다. 어머니의 남편이 허락했다고?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 아들을 만나러 가는 것조차 막을까. 그래서 1년이 다 되도록 얼굴도 보지 못하게 했을까. 나는 안다.
6-2
나는 책가방을 던져 놓고 곧바로 집을 나왔다. 어디든 쏘다니고 싶었다. 나는 아무 길이나 무작정 걸어 다녔다.. 되도록 아무 생각도 불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잡다한 생각들이 여러 통로를 통해서 자꾸만 밀어닥쳤다. 들끓는 구더기 떼 같은 생각들의 난무로 시종 머릿속이 맑지 못했다. 나는 해가 지는지도 몰랐고, 배가 고픈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어디를 어떻게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없었고, 또 알고 싶지도 않았으며, 알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가끔씩 정신의 공허를 대변하듯 현기증을 느꼈고, 식은땀을 흘렸다. 파김치처럼 지친 다리를 마침내 쉬게 한 곳은 교회당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곳에 갈 계획이 없었다. 따라서 교회당의 긴 의자에 몸을 앉히고 나서 나도 놀랐다.
그 십자가도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그런 것처럼 그것 역시 나 혼자만을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나는 내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한없이 풀어놓았다. 내 내부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웅크리고 있었던가.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별의별 이야기들이 다 나왔다. 내 속에 그런 게 있었는지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고 아무에게도 해보려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빠져나왔다. 일찍 세상을 버린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고, 그 아버지로 인해 불행해진 어머니 이야기도 나오고, 유년기 때의 교회 전도사 이야기가 나오고, 학교 이야기가 나오고, 반장 이야기가 나오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내 감정에 북받쳐 흐느끼기도 했다. 마치 고백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고백들은 끝이 없었다. 나는 시종 바로 눈앞에서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는 상대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면 그 상대가 금세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안타까운 기분 때문이었다.
나는 복종했다. 나는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그녀는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녀의 손을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 따뜻함과 부드러움은 내 의식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녀는 입술을 조그맣게 열어 기도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았다. 절망과 허무의 심연에서 오묘하게도 희망의 싹이 솟아오르는 것 같은 경이로운 그림을 나는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그 순간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고 느꼈다. 나는 운명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운명이 달아나려 하면 내 쪽에서 오히려 운명의 손목을 단단하게 그러쥘 것이다. 나는 그녀가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 신학 공부를 하여 목사가 되겠노라고 말했다.
6-3
그리고 나는 이제 무엇을 써야 하나.
'읽으며 > 시. 소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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