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방학 선택 과제가 있었다.
여러 활동 예시 중에서 3가지 정도를 골라서 방학 동안 하는 것이었다.
방학 숙제로 어떤 것을 선택할지 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이 고른 것은 ‘하루 동안 음식 안 먹고 배고픔 체험하기’와 또 다른 것을 골랐다.
“하루 동안 굶기는 어려울 텐데.”
“밥 먹기 싫을 때도 있는데 괜찮아요. 쉬울 것 같은데요.” 라며 자신 있게 과제를 선택했다.
과제를 하는 날이 되자 딸은 약속대로 아침을 먹지 않았다.
점심때가 되자 배가 슬슬 고픈지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네가 선택한 과제이니 힘들어도 끝까지 해보렴. 배가 많이 고프면 물을 마셔봐.”
딸은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힘없이 방으로 들어갔고, 나도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딸은 안 먹는데 다른 가족들만 점심을 먹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녁을 먹을 때가 되자, 밥을 못 먹는다면 초코파이라도 먹게 해달라고 딸이 졸랐다.
“초코파이를 먹으면 너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거다.
오늘 하루는 네가 아무것도 안 먹고 배고픈 것을 체험하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실제로 먹을 것이 없어서 세상에는 굶는 친구들이 무척 많아.
배가 고프면 물을 마셔봐.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픈 친구를 생각하며 굶어보는 것도 너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엄마는 엄마도 아니야. 딸이 이렇게 배가 고픈데 못 먹게 하다니.”
배고픈 딸을 뒤로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먹으라고 하기도 어렵고, 배고프다는 딸에게 먹지 말라고 하기도 가슴 아팠다.
아빠가 슬며시 뭐라도 먹을 것을 챙겨주었으리라 생각된다.
그 뒤 아이들에게 제발 밥 먹으라고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알아서 자기 몫을 잘 챙겨 먹었다.
아주 맛있게.
요즘 유튜브나 TV에서 먹방으로 내기하듯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 걱정스러운 생각이 든다.
‘혹시나 저 방송을 배고픈 사람들이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온 가족이 굶고 있는데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버리는 것을 보는 심정은 어떨까?
돈은 벌지 모르지만 그들의 건강에도 좋지 않을 텐데…….’
살을 빼기 위해 굶기를 선택할 때 평소 그들이 먹는 한 끼 전부나 절반 정도를 배고픈 아이들에게 기부하면 어떨까?
폭식을 하고 싶은 생각이 솟구칠 때 배고픈 아이를 생각하면 그 생각이 사라지지 않을까?
내 음식을 굶는 아이와 나눈다면 나는 건강해지고 사회도 건강해질 것이다.
아이들이 밥을 안 먹어서 칭얼거릴 때 과감하게 밥그릇을 치우면, 한 나절이 지나기 전에 밥 달라고 부모님에게 조를 것이다.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라는 책을 아이와 함께 읽어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지구상에는 마시는 깨끗한 물조차 구하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 내가 마시는 깨끗한 물 한 컵도 감사하게 될 것이다.
먹는 음식, 편히 잠자는 침대와 집, 옷 등 일상으로 누리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가진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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