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많은 형제와 자란 이전 세대와 달리 요즘엔 한 아이를 키우기에 온 가족이 매달린다.
미래 세대를 잘 키우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노력도 긍정적이다.
기관의 행사나 각종 정보를 잘 활용하면 아이와 어른들이 배우고 즐기기에 좋은 프로그램이 너무도 많다.
손녀의 어린이집 행사 참여로 둘째를 돌봐달라는 딸의 부탁을 받았다.
행사 후 일찍 돌아온 손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오늘 하루 내가 세운 계획은
1. 해운대인문학도서관 주관 김경일 교수 북콘서트 가기
2. 아이와 함께 해운대수목원 관람카트 타기
3. 영화의 전당에서 시네마 음악회 즐기기
그야말로 하루를 해운대에서 배우고 즐기는 것이었다.
2번이 갑자기 정해지는 바람에 1번은 취소하고, 음악회 후 수영강의 네온사인을 즐기며 집까지 걸어가는 해운대 100% 즐기기 프로그램.
아직 정식개장은 하지 않았지만 해운대수목원을 미리 개방하여 시민들이 즐기도록 한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넓은 식물원 어디라도 좋지만 너무 넓어서 걷기가 서투른 어린아이들과 즐기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우연히 부산시통합예약시스템에서 ‘해운대수목원 관람카트 타고 한바퀴’ 가 있어서 얼른 신청했다.
아들가족이 올 때 온 가족이 함께 타면 좋겠다 하여 예약을 해보았으나 주말이라 쉽지 않았다.
이번엔 날짜가 임박했지만 평일이라 가능했다.
수목원에 도착하니 꽃이 너무 예쁘다는 손녀의 간지러운 탄성이 터져 나온다.
입구 꽃동산에서 사진을 찍고 즐기는 사이 15인승 아담한 관람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하시는 분에게 궁금한 것을 물으니 친절하게 답해주셨다.
수목의 이름, 생태, 식물의 계통 등 모르시는 것이 없었다.
초식동물원 부근에는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풀을 뜯는 양 떼와 염소도 보이고, 우리 안에는 타조와 당나귀도 보인다. 내려서 보고 싶은 손녀의 마음도 모르고 차는 지나갔다.
차를 타고 가면서 길 가의 허브를 손으로 만져보고 꺾어서 냄새도 맡았다. 자식 자랑하는 아빠처럼 수목의 특징을 설명하시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식물의 자태와 향기, 잘려나간 풀의 풋내까지 느끼는 느린 관람 길이었다.
계속 차를 타고 관람만 하는지 궁금하던 중 연꽃이 자라는 연못과 정자가 있는 새소리원에서 멈추었다.
입구에 빨간 산딸나무가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다.
먹을 수 있는 열매라고 하여 맛이 궁금하던 차에 안내원이 먹어보라며 따주었다.
새콤한데 씨가 씹히는 익숙하지 않은 맛이었다.
그래도 손녀는 그걸 잘 먹는다.
하나 더 받은 열매를 소중하게 붙잡고 산딸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새콤한 세상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리라.
500년 전 걸었음직한 길을 걸으며 나는 잠깐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나와 인연을 맺은 귀한 생명들, 내리쬐는 햇빛, 부드러운 바람의 간지럼, 잘 생긴 나무들이 우리 앞에 열병하고 온갖 꽃과 열매가 내일을 준비하는 한없이 눈부신 순간이었다.
상사화와 꽃무릇이 같은 꽃인지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안개가 나오는 장소에서 차가 멈췄다.
차가 오는 시간에만 안개장치를 가동하는 것 같았다.
안개 낀 길을 걷는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손녀는 안개 속에 들어가기를 무서워했다.
안개에 별 감흥이 없는 나와 첫 안개를 보는 손녀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얼마나 다른가?
아스라한 안개 속에 엄마의 손을 잡고 걸었던 낯선 이 순간을 언젠가 기억할까?
‘안개’라는 말을 할 때마다 이 장면과 시간을 가져올 것이다.
내가 처음 느낀 안개는 어떤 것이었는지 떠오르질 않는다.
어릴 적 가마솥 위에 피어오르던 김과 고소한 밥 냄새가 떠올라 피식 웃는다.
바람에 누운 억새와 파란 하늘과 구름이 가을임을 알리는 길로 접어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다른 그림이 그려지는 사진을 찍다 보니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이 겹쳐진다.
파란 하늘과 구름, 온 몸을 휘감는 듯한 바람은 비슷하지만, 작은 아이를 안고 큰 아이 손을 잡고 걷는 딸의 뒷모습이 아름다워 눈물이 찔끔 났다.
50분 정도의 관람이 끝났다.
만나지 못한 양들과 다른 동물을 만나기 위해 다시 초식동물원을 향했다.
도착하니 타조만 보이고 모두 우리로 들어간 후였다.
벌써 잠잘 준비를 하는 시간인가 보다.
높은 언덕 우리 부근의 염소에게 눈인사를 하고, 손녀에게 내려와 준 호기심 많은 아기염소에게 고마워하며 풀을 주었다.
다음엔 양들과 염소, 당나귀도 다 볼 수 있게 좀 더 일찍 오자며 풀 숲 오두막에서 꿀맛 과자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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