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은 돈의 크기와 비례할까?
정확하게 비례하진 않더라도 돈에 따라 즐거움의 크기는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판기 커피와 호텔에서 마시는 커피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
커피잔을 들었을 때 소음이 들리는지 음악이 들리는지, 눈에 보이는 풍경은 어떠한지,
커피맛과 향기, 심지어 소파의 푹신함, 이 모든 것이 커피의 맛을 만들고 가격을 결정한다.
6000원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김밥 한 두 줄, 배추 한 포기...
돈에 날개가 달린 듯 한 달 월급이 사라지는 세월을 오래 살아서인지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쓸 때는 손이 오그라들었다.
그나마 오래된 모임에서 끌려가 듯 다녀온 해외여행이 나를 위한 간 큰 투자였다.
나를 위해 쓰는 것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아끼며 살았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피아노를 사고, 서랍장 4개와 책꽂이까지 있는 있는 침대를 주문 제작한 것 정도가 지출범위를 넘어선 것이었다.
겨울이 되면 발뒤꿈치가 갈라져 스타킹을 신으면 올이 빠지고 갈라진 틈이 아파왔다.
바셀린을 발라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목욕 가서 물에 푹 불린 뒤 발뒤꿈치 각질을 벗겨내니 조금 좋아졌다.
그렇게 여러 번 목욕탕에서 불리고 벗겨내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어느 새 발뒤꿈치가 부드러워지고 갈라짐도 나았다.
그 동안 목욕비 아낀다고 자주 목욕탕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나를 위해 목욕비도 아까워하며 사는 내 모습이 한심하고 초라해보였다.
빚을 갚고 집을 마련하느라 평생 빚진 사람처럼 사는 내 모습에 공연히 화가 났다.
남들이 재산을 불려나갈 때 그저 빚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내 목표였다.
열심히 일한 나에게 목욕비 6000원을 투자하여 6만원, 60만원 어치의 행복을 만들자는데 생각이 미쳤다.
이름하여 ‘6000원의 행복’을 누리기로 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열심히 일한 내 몸을 어루만져주는 것,
약해지고 빠져가는 머리카락에 영양을 주는 일,
찬물에서 간단한 운동을 하기도 하고. 얼굴에 팩을 붙이면서 나를 사랑하는 팩이라며 슬며시 웃기도 하고.
머리를 말리고 거울을 보면 머리는 제법 풍성해지고 얼굴도 생기있어 보인다.
아파트 공원을 걸어 돌아오는 길엔 세상이 깨끗해 보인다.
6000원의 행복이 아니라 돈으로 값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 된다.
물가가 올라서 6000원의 행복이 떠나간 지는 오래 되었지만 그래도 그 행복만큼은 붙들어야지.
퇴직을 하면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즐거운 일을 해보자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하는 광고처럼 평생 열심히 산 나를 위해 돈을 쓰고, 내가 즐거워야 주변도 밝아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할인하는 시간대에 장을 보러가고,
영화의 전당에서 5000원하는 조조영화를 즐기며,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즐겁다.
나의 노력으로 더 큰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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