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영민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며,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사상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브린모어대교수를 지냈다.
산문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논어 에세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펴냈다.
표지 안 첫 장에 “배우는 사람은 자포자기하지 않는다.”는 친필 글과 저자 사인이 있어서 독자나 제자들에게 어떤 자세로 글을 쓰시고 가르치시는지 느껴져서 따뜻한 마음으로 글을 읽게 되었다.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이 입학 전 필독서로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공부해야 하는 누구나, 특히 가르치는 직에 있는 분들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몇 부분 옮겨 적어 본다.
1. 심화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단어의 기본적인 뜻뿐 아니라 관련된 함의까지 숙지해야 한다.
2. 이 세상 속에 산다는 것은 모순, 긴장 혹은 혼란 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 세상을 주제로 논술문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모순과 긴장과 혼란을 직시하되, 그에 대해 가능한 한, 모순 없는 문장을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논술문을 쓰기 위해서는 정교하게 정의한 개념과 분석적 논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외부 세계에 대한 충분한 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다.
세상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은 모순이나 긴장이나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공부하는 이가 할 일은, 이 모순된 현실을 모순이 없는 것처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모순을 직시하면서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다.
3. 예술가나 선승 못지않게 모호한 표현을 선호하는 이들이 정치인이다. 말이 구체적일수록 그 말의 청자는 제한되고, 말이 모호할수록 청자는 포괄적이 되는 법. 그래서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말은 모호하기 마련이다. 나중에 입장을 바꾸어야만 할 때가 왔을 경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상황을 무마해야 할 필요가 정치인에게는 종종 있다.
이처럼 모호한 표현으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고자 할 때,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발화자가 아니라 청자다. 표현이 모호하면 발화자는 그 표현이 담고 있는 의미를 나중에 자의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여지를 누리게 된다. 그리하여 그 모호한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봐야 하는 책임은 청자에게로 넘어가기 일쑤다. 모호했던 말이 나중에 멋대로 바뀌었을 때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청자다.
정치인이나 예술가와는 달리, 논술문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견해를 최대한 명료한 표현을 통해 공적으로 설득하려고 해야 한다. 논술문에서 모호한 표현을 자제하는 훈련은 민주주의의 덕목 함양과 무관하지 않다.
4. 말뜻을 판별하는 일은 한 줄 문장을 쓰는 일을 넘어서, 큰 사회적인 함의가 있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할 줄 모르면서 다양성이 넘치는 혹은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 다른 의견을 모두 틀린 의견으로 몰아세울 텐데.
그렇다고 해서, 구분이 다 능사라는 말은 아니다. 어떤 구분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인종 구분과 같은 것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구분이 단지 현상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현상을 평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단어를 둘러싼 제반 조건이 바뀐다면, 단어 자체가 바뀌지 않아도 그 단어의 함의는 바뀔 수 있다.
퀜틴 스키너는,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규범적인 평가어들의 쓰임새에 의해 지탱되므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 평가어의 적용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한 바 있다. 실로 뛰어난 작가는 시대의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당대의 평가어를 재정의해내기도 한다.
5. 책 제목을 붙이는 것도 지적인 훈련의 일부이다. 제목을 붙이는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이 쓴 글의 내용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제목 붙이기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 그리고 ‘대표’ 혹은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볼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제목은 함축적인 것이 좋다. 제목이 함축적인 나머지 내용을 온전히 다 담기 어렵다고 느낄 때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부제다. 설명과 부연의 성격을 띤 부제가 존재할 경우, 본제목은 좀 더 비유적인 표현이 되어도 좋다.
제목은 내용을 잘 반영하되, 함축적이어야 하고, 함축적이면서 눈길을 끌 수 있어야 한다.
제목은 독자의 관심을 환기하고, 일견 모호하고 불투명한 책 내용을 선명히 해줄 수 있고, 다면적인 글 내용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제목으로 인해 비로소 글이 완성되는 멋진 경우도 있다.
6. 지식 탐구를 통해 자신의 어떤 부분이 달라지는가? 지식이 깊어지면, 좀 더 섬세한 인식을 하게 된다. 인식의 깊이가 깊어지고 나면, 처음보다 더 섬세하게 대상을 구별하게 된다.
안목이 밝고 섬세해져 대상을 보다 선명하게 보게 되면, 그간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도 감각할 수 있게 되지만, 그간 몰랐던 더러움도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섬세한 구별 없이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 자신의 독특한 경험에 맞는 섬세한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포착하지 않는 한, 그 경험은 사라지고, 그만큼 자신의 삶도 망실된다.
섬세함은 사회적 삶에서도 중요하다. 섬세한 언어를 매개로 하여 자신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고 또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훈련을 할 때, 비로소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 있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다면,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 만남에는 섬세한 언어가 필수적이다. 섬세한 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부를 고무하지 않는 사회에서 명철함과 공동체 의식을 갖춘 시민을 기대하는 것은 사막에서 수재민을 찾는 것과 같다.
7. 창의적이 되어라. 그 자신이 과학자인 동시에 과학소설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창의적인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창의성에 대한 글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두 생각을 연결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을 해야 한다. 잡념이 많은 인간은 일단 창의적이 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춘 셈이다. 생각 자체가 아예 많지 않다면, 일단 경험을 확대해야 한다. 인간은 대개 대상이 있어야 비로소 생각한다. 새로운 대상을 경험할 수 있는 여행이나 독서가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여기서 한 걸을 더 나아가 일견 별로 관계없어 보이는 생각과 경험들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용기라는 덕목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이 혹은 자신의 글이 원래 계획했던 결론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글이 진짜 창의적이 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창의적이 되기 위해서는 용기뿐만 아니라 유연성도 필요하다. 용기만 있을 뿐 유연성이 부족하면 큰 각도로 꺾어서 새로운 길을 가기 어렵다. 자신이 정보를 집적하는 데만 골몰했다면, 주기적으로 정신의 스트레칭이 될 만한 양질의 이론적 자극을 찾아 나서야 한다.
새롭게 생각하는 일은 많은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고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습관화하려 든다. 평소의 습관을 넘어서려면 소비할 여유분의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시간적, 여유, 경제적 여유, 체력적 여유 등 여러 가지 여유가 필요하지만, 특히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쓸데없는 시간이 있어야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그 당장은 쓸데없는 생각이 나중에는 창의적인 생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어렵게 손에 쥔 여유를 가지고 과감하게 험지로 떠나야 한다. 너무 안온한 환경에 자신을 방치해 두면, 새로운 생각을 할 역량 자체가 퇴화해 버릴 것이다. 흥미로운 험지를 기꺼이 찾아다녀야 한다. 영감이 넘치는 강의, 낯설지만 자극이 넘치는 장소, 까다롭지만 창의적인 인물을 찾아 그 자장 안에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만의 뮤즈를 찾아야 한다.
8. 책은 사회와 자아의 중간에 있다. 사회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독서에 몰입할 수도 있고, 자아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책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 언어가 풍부해지만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더라고 작은 축제와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된다. 다량의 정보와 자극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풍부한 상상을 누리기는 어렵다.
다독도 해야 하고 정독도 해야 한다. 정독할 부분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기만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문장들이 바로 정독할 부분들이다.
정독은 적어도 세가지 종류의 훈련을 필요로 한다. 첫째, 그 책의 저자가 침묵하는 내용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모호하게 숨겨놓거나 암시만 해둔 진짜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독자는 더 많은 관심을 책에 기울여야 한다.
둘째, 책 내용을 근저에서 뒷받침하고 있는 가정과 전제들을 재구성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비판적 독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적 독해를 위해서는 같은 문제에 대해 경쟁하는 다른 주장들을 접해보아야 한다. 주장의 타당성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 독자는 경쟁하는 다른 주장들을 스스로 재구성해가며 읽어야 한다.
9. 정리되지 않은 자료의 나열이나 장황한 묘사만으로는 훌륭한 연구가 될 수 없다. 좋은 연구는 대개 좋은 연구 질문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질문은 연구자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필요하다. 지적 갈증을 해소하고 자신의 인식 지평을 확대하려면, 독자 역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선 해당 저작의 연구 질문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질문은 연구뿐 아니라 토론의 경우에도 필요하다.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일단 질문을 완성형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발표 내용이 갖는 내적 모순을 지적하면 대개의 발표자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것이다.
10. 지성에 기반한 토론은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나은 답을 찾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증거와 논리에 기반해 타인과 의견 교환을 하고, 그를 통해 진일보한 지점에 도달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지성에 기반한 토론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토론이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것. 견해가 없으면 토론이 아예 시작될 수도 없다. 토론의 목적은 다양성을 무한정 확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여 좀 더 나은 지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것과 타당한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취향을 넘어선 자기 합리화가 일정 정도 타당성을 얻어, 마침내 상대를 설득하고자 할 때 비로소 견해라는 것이 확립되기 시작한다. 즉 견해를 갖는다는 것은, 곧 어느 정도 상대에게 비판적이 된다는 것이다.
토론을 통한 설득이란, 상대가 상당히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람일 경우에나 가능하다. 상대가 받아들이건 말건, 일단 정확히 상대 논의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 이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길이다.
11. 발제란 ‘논제를 정리하여 제기함’, 혹은 ‘논제를 정리하여 논의의 대상으로 내놓다’라는’ 뜻이다. 세미나에서는 누군가 앞에 나서서 그날의 논의거리를 일목요연하게 제기할 책임을 맡곤 한다.
세미나에서는 공부 혹은 논의의 주제가 있고, 그에 관계된 텍스트가 있다. 주제에 대한 논의는 대개 그 텍스트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학생들에게 해당 텍스트를 발제하라고 했을 때 그 텍스트를 단순히 요약해 오는 현상이 흔하다. 단순 요약은 발제가 아니다.
결국, 발제를 위해서는 단순히 내용 요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텍스트의 핵심 주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핵심 주장을 파악하려면 그 주장을 이루는 나머지 부분들의 역할을 분석적으로 해체 조립할 수 있어야 한다. 핵심 주장을 파악하고, 그 주장을 세부적으로 구성하는 하위주장들을 판별해 내고, 그 주장들의 관계를 살피고, 그 주장들이 타당한 근거를 가지 고 있는지까지 고려해서 요약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단순한 요약을 넘어선 것이다. 발제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이처럼 분석적인 요약이다.
마지막 부분에 공부에 대한 저자와의 대화가 있었다.
문: 교수님께서 평소 수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답: 학생들의 변화를 중시합니다. 수업을 들어도 아무 변화가 없다면 무슨 의의가 있겠습니까? 인생은 짧기에, 수업이 지루하지 않기 바랍니다. 학생들이 이 학교에 들어오길 정말 잘했다고 느끼게 해 줄 강의를 퇴임 전에 한 번이라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문: 졸업 후 서울대인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길 바라는지 ?
답: 학생과 졸업생들이 자신이 속한 곳에서 참여의 몫을 늘 상기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정크 메일로 가득한 메일함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학창 시절에나 졸업한 이후에나 좋은 배움의 기회를 목마른 사람처럼 찾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적 사기꾼들을 조심하면서.
산악인 존 크라카우어는 어떤 바보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공부의 길에서 살아 돌아오는 일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갈아 넣는 데는 익숙해도 잘 쉬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걷는 것만 휴식은 아닙니다. 퇴행도 휴식입니다. 어려운 글을 쓰던 사람이 쉬운 글을 쓰고, 어려운 말을 하던 사람이 쉬운 말을 하면, 그 순간 휴식이 됩니다. 휴식의 궁극은 빈둥거리며 여행하기입니다.
그러면서 여행에 대해 상상하며 쓴 글은 제자와 친구처럼 소통하고 교수님이 가진 모든 걸 나눠주고 싶은 참 스승의 모습이 보여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 수업 주제를 휴식으로 잡은 것은 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물 흐르듯 읽히는 ‘공부란 무엇인가’ 원서를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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